북방수호전 1권 지수성(1) 북방수호전

지수성(地囚星)

마른잎이 많은 계절이 되었다.
매일 아침마다 마른잎을 모으는 것이 주귀의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앞의 길이 양산호 근처를 끼고 있어서 조금만 올라가면 주귀의 가게가 있었다.
나그네는 적지 않다. 물자를 운반하는 군이나 현의 수송대도 자주 지나갔다. 가게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에 충분했다.
마른잎을 쓸고선 아침 준비에 들어간다. 돼지고기와 채소, 쌀 그리고 양산호에서 잡힌 생선이 대부분이었다. 가을이 되서 채소 안에 버섯류도 들어간다.
이제부터 겨울에 접어들면 고기 같은 것들은 대량으로 저장할 수 있다. 가게 밖에 걸어놓으면 딱딱하게 얼어서 썩지 않는 것이다.
가게는 탁자가 6개 있고 한 번에 30명은 들어갈 수 있지만 모든 탁자가 차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안쪽에는 주방이 있고 모퉁이에는 술 항아리 3개가 나란히 있다.
2층이 주귀가 사는 곳이었다. 뒤편 오두막에는 하인 하나가 허드렛일 대부분을 맡았다.
아내 진려(陳麗)가 가게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24살이지만 2년 정도 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어딘가 아픈 것도 아니고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라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하루 종일 자거나 하는 것이다. 뭔가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본인이 분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주귀는 43살이다. 여자는 계속해서 바꿔왔지만 진려를 아내로 맞아들이고부터는 다른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게 되었다. 4년 전의 일이다. 끌어당기는 듯한 살갗에 반한 것도 있지만 마음이 크게 기울어졌다. 여자에게 마음을 쏟아보는 것은 주귀에게 있어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 진려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 그게 주귀의 근심거리였다.
아침 준비를 마치자 주귀는 2층으로 올라가 진려의 곁으로 갔다. 오늘은 상태가 조금 나은지 일어나서 머리를 빗고 있다. 새카맣게 풍성한 머리카락이다.

"기분이 괜찮으면 가끔은 밖을 걸어보는 건 어때, 진려."
"그러고 싶긴 한데 또 쓰러지면 어쩌나 불안해져서요."

날씨가 좋은 날 밖에 나가서 가게 주변을 잠시 걸었던 것만으로 진려는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져 버렸다. 그런 진려라도 밤에는 주귀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충분히 주귀를 만족시켰다. 투명하리만치 흰 진려의 피부가 얼굴은 물론 목덜미부터 의외로 풍만한 가슴에 걸쳐 선명한 홍조를 띈다. 그 홍조를 바라보며 정액을 쏟아내기 위해 평소에는 하나인 침실의 등을 4개로 늘려놓았다.

"서방님이야말로 가끔은 기분 전환 삼아 성에라도 가보시는 게 어때요? 전 집안에 있는 한 걱정하실 것 없어요."
"난 가게에서 일하는 게 제일이야."

허송세월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진려가 곁에 있어만 준다면 그것도 괜찮다는 생각도 같이 든다.
마음속에 체념 비슷한 것이 있다. 예전에는 세상에 나가겠다는 뜻을 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순수함이 거짓말 같기도 하다. 과거에 붙어서 관리가 됐다고 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겠는가. 오랜 세월 뱃속이 썩어버린 그런 관리가 되는 수밖에 없었을 테지.
잠시 진려의 말벗을 해주다가 점심 손님이 올 즈음해서 주귀는 아래로 내려갔다.
찾아온 것은 왕륜(王倫) 일행이었다. 무기 같은 것은 짐수레에 숨기고 도로라도 만드는 인부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다.

"돼지고기랑 채소 그리고 만두 좀 줘, 아버지(親父)."
"그리고 술도."

왕륜 뒤에 있던 송만(宋万)이 말을 이었다.
가게에서 왕륜은 주귀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왕륜은 함께 과거 시험을 치른 동료였다. 그리고 결국 둘 다 합격하지 못했다. 주귀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됐지만 왕륜은 여전히 시험에 부정이 있었던 거라고 말하고 있다.
왕륜이 여기서 가게를 하는 주귀를 찾아온 것은 벌써 11년 전의 일이다.
왕륜은 지금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기 위해 신명을 걸고 싸울 거라고 말했다. 그것을 위해 양산호 속에 산채를 세울 거라고 열정적으로 말했다.
양산호 속의 섬은 상당히 넓어서 관군에 쫓겨온 도적(賊)들이 도망 쳐가는 곳이기도 했다. 주귀도 배를 타고 도망치는 도적을 여러 번 목격했다. 언젠가는 도적들 소굴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왕륜은 백여 명의 동지가 있다고 말했다.
부탁받은 것은 가도를 지켜보는 것과 정보 수집이었다. 과거에서 같이 떨어졌던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친밀감은 있었다. 게다가 양산호 속의 섬이 도적들 소굴이 되는 걸 환영할 수 없었던 주귀는 부탁을 받아들였다. 왕륜이 말한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것에 분명 공명한 점도 있었던 것이다.
11년 동안 양산호 산채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중 절반은 왕륜의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뜻에 공명한 자들일 것이라고 주귀는 생각했다.
처음 2, 3년은 분명 왕륜도 관청의 짐을 습격하거나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돈을 가진 나그네나 상인이 운반하는 듯한 짐을 습격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 편이 관청의 추격이 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왕륜도 주귀, 자신처럼 편한 길을 고른 거겠지. 그것은 뒤틀린 연대의 정이기도 했다.
왕륜에게 가게에 들른 상인이 어떤 짐을 운반하고 있는지 알리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그네를 대상으로 한 가게가 근처에 몇 번 생겼었지만 모두 왕륜이 때려 부숴주었다. 대신에 주귀도 정보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은 도적의 동료이나 마찬가지라고 주귀는 생각했다.

"요즘에는 짐이 별로 움직이지 않는가 봐, 아버지."
"이쪽 가도가 경계 받기 시작한 거야, 왕륜. 관청의 짐은 지나가고 있어. 그건 알려주고 있었을 텐데."
"관청의 짐은 역시 피하고 싶어서."
"지금은 수천 명의 부하가 있잖아, 왕륜. 게다가 견고한 산채도 있지. 대체 왜 관청의 짐은 피하는 건가?"
"그건 관군에 쫓겨본 적이 없는 자들이나 하는 말이야. 알겠어, 아버지? 관군은 만만하지 않아. 거기다 무한에 가까운 병력을 가지고 있다고. 그냥 도적이 아니라 반란군으로 여겨지면 산채가 포위되서 열흘이면 끝장날걸. 지금은 그냥 힘을 모아야 해. 그걸 생각할 때라고."

힘을 비축한지 11년째이다. 앞으로 5년, 10년 더 힘을 비축한다고 해도 그다지 바뀔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왕륜의 말에는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 있었다. 백성이란 무엇인가. 나라란 무엇인가. 백성에게 있어 관리란 무엇인가.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부정을 바로잡기 위해 뭘 할 수 있는가.
부정에서 절대 눈을 돌리지 마라. 마음에 새겨라. 무슨 일이 있거든 그걸 떠올려라. 같은 생각을 품은 사람을 곧 찾을 것이다. 손을 잡아라. 3명이 되거든 고리를 만들어라. 3명의 고리를 4명, 5명으로 크게 늘려가라. 그리고 또 다른 고리를 찾으라.
처음부터 왕륜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주귀에겐 과거 시험에서 떨어진 원한이 그렇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원한은 사람에게 힘을 부여한다. 왕륜이 과거에 합격했다면 사람들에게 같은 지탄을 받는 관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괜찮다. 사람은 패하는 것,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바뀌는 거니까.
지금도 왕륜이 습격하는 것은 대상인의 짐이 많았다. 관리와 결탁해서 얻은 이득. 일단 이치(理屈)는 통했다.

"아버지, 난 부하 3천을 데리고 있어. 거기 얽힌 것까지 포함하면 5천 명이 산채에 있는 거라고. 우선 이 사람들을 먹여살려야만 해. 뭘 하든지 간에 필요한 건 사람이니까."
"그건 알고 있어."

산채에 있는 5천 명이 많은 것인지 적은지 주귀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5천 명을 먹여살리는 게 어느 정도로 큰일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덧글

  • 2021/01/02 18:57 # 답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ㅜ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_ _)
  • 뇌세척 2021/01/04 18:31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보람찬 한해 되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건강 조심하시고요.
  • 최강조운 2021/01/04 01:53 # 답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 뇌세척 2021/01/04 18:31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좋은 일 좀 많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