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천미성(7) 북방수호전


4.
10개 정도를 묶어놓은 바늘을 쓰며 노인은 신음했다. 문신을 받고 있는 사진 쪽이 태연한 표정이었다.
9마리의 용을 거대한 하나로 만든다. 노인은 그걸 위해 성에서 불려온 것이었다. 9마리 용을 이어서 하나의 용이 몸을 휘감는 듯한 도안이었다. 그래도 9마리 용이 있는 곳만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사진은 그곳에만 붉은색을 집어넣어 커다란 비늘처럼 보이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쳐다보고 있던 노지심이 생각하기에 노인의 실력은 확실했다. 9마리 용의 문신을 새긴 것도 이 노인이었다. 거대한 용에게 지지 않고자 노인은 신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무엇 때문이오? 구문룡이란 이름을 버리려는 건가?"

하루에 다 새길 수는 없다. 방에서 쉬고 있던 노인에게 노지심이 물었다. 노인은 슬쩍 고개를 저었다.

"저 용이 제 마지막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스님. 몸에서 나오는 패기 같은 것에 눌려죽고 말 겁니다. 게다가."
"게다가, 뭐요?"
"9마리의 용은 그대로 9장의 큰 역린이 되는 겁니다. 9장의 역린을 지닌 용이지요."
"그런가. 저 붉은색은 역린이었군."
"용납할 수 없는 9가지를 몸에 새기는 것 같아요. 비겁함이나 배신이나 겁이 많다던가, 도련님은 마음에 정해놓은 9가지가 있는가 봅니다."

주무, 진달, 양춘을 만난 뒤로 사진은 확연히 바뀌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소화산으로 가거나 저택으로 불러들이거나 시작한 것이다.
사진도 나름대로 뭔가를 찾아낸 것이겠지. 그리고 9장의 역린으로 스스로를 묶으려 하고 있다. 다만 뭔가 하나가 부족했다. 그것이 있다면 9장의 역린을 지닌 용은 세상을 비상할 것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오래 머물러버렸군, 사진 님."

노지심은 사진에게 이별의 인사를 건넸다.

"아니, 여행을 떠나시려는 겁니까?"
"이 집의 느낌이 좋아서 그만 오래도록 뭉그적거리며 폐를 끼쳤네."
"무슨 말씀이세요. 시골이라 아무것도 없지만 전 노지심 님이 1년이든 2년이든 머물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씀 하나하나로 전 눈을 떴어요."

사진은 상반신을 드러낸 채 우람한 근육을 드러내고 있다. 거기에 조각된 거대한 용이 휘감고 있다. 문신을 새겼을 때에는 몸에서 채액이 스며나오기 때문에 벗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의 인생은 이별을 거듭하는 것과 같지만 사진 님과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네. 그게 인연이라는 거지. 난 인연을 믿으며 살고 있다네."

사진과는 충분히 대화를 나눴다. 인간 세상과 나라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해서도 넘칠 만큼 대화를 나눴다.

"다음에 만날 때는 그 용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군그래."
"정말 여행을 떠나시는 겁니까, 노지심 님. 왕 선생님이 떠나실 때처럼."
"용을 소중히 여기게, 사진 님. 왕진 님의 말씀도 잊지 말고."
"이별이군요. 적어도 제가 저 자신을 다잡기 위해 새긴 이 용이 완성될 때까지만이라도."
"다음에 만났을 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세."

노지심은 품에서 책 하나를 꺼냈다.

"이걸 드리겠네. 내가 경애하는 분께서 말씀하시던 걸 적어둔 걸세. 한가할 때 읽어보고 날 떠올려주게나."
"그런가요. 노지심 님도 없어지는군요. 그리고 전 시골 보정으로서 하는 일도 없이 헛되이 늙어갈 뿐이겠죠."
"사진 님. 누구에게나 때라는 것이 있네. 내겐 사진 님의 때가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드는군."

사진은 거듭 말려보려 했지만 노지심은 고사했다. 반드시 다시 만날 거라며 송별회도 거절한 노지심은 다음날 아침 일찍 사진의 저택을 떠났다.
하지만 바로 동쪽으로 가진 않았다.
소화산에서 가까운 시냇가에서 사람을 기다렸다.

"화화상에게서 편지를 받고 무슨 일인가 했더니만, 떠나는 건가?"

찾아온 자는 주무였다.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나란히 앉아 강을 바라보았다. 주무와는 제법 깊은 곳까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송강에 대해서도 이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것은 얘기해 주었다.

"내심 조만간 운성으로 안내해 주지 않을까 생각했지. 나 같은 도적에겐 그 책을 쓴 분과 만나는 건 무리인가?"
"그 무슨 말인가. 지금 누구보다 먼저 만나게 해주고 싶은 사내가 자네야, 주무.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네. 운성으로 가는 것보다 자네는 여기 있어주는 편이 좋아."
"그런가. 날 기억해 준다는 얘기로구만."
"때가 되면 편지를 보내겠네."
"알겠네. 일부러 이렇게 이별의 기회도 만들어주었으니."
"이별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주무. 난 자네에게 미리 얘기해둬야만 하는 게 있네. 자네가 알고 있으면 지독한 데까진 가지 않을 것 같고. 얘기를 듣고 날 경멸한다고 해도 괜찮네."
"대체 무슨 일인가?"
"사진에 대해서야."
"흐음."

주무는 제방의 풀을 하나 뽑아들어 만지작거렸다.

"이대로라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울분을 품은 시골 보정으로 끝나고 말 걸세."
"하지만 난 도적이 될 순 없다고 보네. 그 정도의 무예를 가지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사내일세. 소화산 우두머리가 된다면 내 그 밑에서 수백은 확실히 모을 자신은 있네만."
"잘 자랐지. 자네들이 옳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적이란 이름에 얽매이게 됐어. 역시 사진이 소화산으로 들어가려면 하나가 더 필요할 것 같네."
"그게 뭔지 알았다면 내가 먼저 권했겠지."
"사진의 저택에서 또 연회가 있겠지, 주무. 그때 주의 군대가 저택을 공격할 걸세. 실은 사진도 소화산의 동료라면서 말이야."
"화화상, 자네."
"날 경멸해도 좋다고 말했잖나. 사가촌에는 사연이란 성실한 사내가 있어서 충분히 보정 역을 잘 맡을 거야. 농경에 있어서는 사진은 사연에게 일임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하나 더 필요한 무언가. 그건 이 세상에서 사진을 없애려 하는 힘이네. 그건 한 인간의 힘이 아니야. 권력이라고 나는 보았네. 주의 군대가 그걸 해준다면 사진은 소화산으로 전진할 수밖에 없게 되겠지."
"무서운 사람이군, 화화상."
"사진이 경애하는 왕진이라는 무술가는 자오산에 은거하며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보는 생활에 들어갔네. 애석하게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더군. 하지만 왕진 한 사람만이면 충분해. 역시 무술은 세상에 도움이 될 때야말로 무술이라 할 수 있을 터."
"사진을 주 군대에 팔겠다면 어찌 내게 말하는 건가, 화화상. 모른 척하면 될 일이 아닌가?"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준다면 그걸로 난 위로 받을 수 있네. 재미 삼아 하는 게 아니니까."

주무는 풀을 강물에 던졌다. 풀은 동쪽 수면에서 멈췄다가 곧 물살을 탔다.

"나 혼자 알고 있는 편이 좋겠지, 화화상?"
"무슨 일이 있어도 사진이 주 군대에 포박되는 사태는 없었으면 하네."
"알겠네. 내가 책임지지."

노지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무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지심은 그로부터 열흘 정도 소화산 근처에 머물렀다.
주 군대가 출동해서 사가촌을 포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구문룡 사진이 저택에 불을 지르고 포위를 뚫고선 소화산으로 들어갔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나쁘게 생각 마라, 사진. 널 주 군대에 팔아넘긴 건 나다. 난 그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노지심은 기침하듯이 말했다. 스스로를 타이르는 것이기도 했다.
노지심은 동쪽으로 향해 서경하남부(西京河南府)로 들어갔다. 알고 지내는 사람의 집에서 편지를 2통 받았다. 하나는 송강에게서, 또 하나는 무송이 남겨둔 것이었다.
하남부는 오래전부터의 수도였기에 개봉부와는 또 분위기가 다르다. 개봉부의 활기에 비해 차분한 안정감이 있다.
큰길에 무술을 볼거리로 펼치는 사내가 있어 노지심은 걸음을 멈추었다. 무술을 보여준 뒤 고약을 팔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구경하는 사람은 몇몇뿐이었다. 사내는 검으로 기와를 베었다. 좋은 재주지만 유감스럽게도 수수했다. 게다가 이런 장사는 하남부의 큰길에서 펼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개봉부에서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말재주도 뛰어나지 않았다.
3번째 기와를 베었을 무렵에는 구경하던 사람들도 떠나기 시작해서 노지심 혼자만 남았다. 그래도 사내는 집중하여 기와를 베었다.

"이제 그만하지."

노지심이 말하자 사내는 등을 돌리고는 주저앉았다.

"왜 그러나?"
"내버려 두게. 배고픈 것뿐이야."
"그런가. 난 밥을 먹으려던 참이네. 괜찮다면 같이 먹겠나?"
"밥을 사준다는 건가?"
"구경시켜줬으니까 말이지."

노지심이 웃으며 말했다. 사내는 허둥대며 길가에 펼쳐놓은 고약들을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좋은 실력이지만 구경꾼들은 모를 걸세."

작은 가게에 들어가 차와 만두를 주문했다. 사내는 고기가 들어간 만두 2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노지심은 자기 몫을 하나 나누었다.

"미안하군. 난 설영이라는 떠돌이라네. 밥줄도 이제 끊겼고. 사실 검 재주를 팔기보단 고약을 팔고 싶네. 약초에 대해선 자신 있어. 내 고약은 효과가 좋거든. 다친데 바르는 상약도 있네."
"파는 방법이 엉망이던데."
"재능이 없어. 검은 조금 쓰지만 자랑하는 약을 파는 일은 좀처럼 되질 않아."
"어렵구만, 산다는 건."
"내 말이. 내 약을 한번 써보라고만 해도 다들 싫어하더군. 왜 그럴까?"

사내의 손끝은 검푸르게 변색되어 있었다. 약초를 다루다가 그렇게 됐겠거니 노지심은 생각했다.

"볼거리 말고 칼을 쓰는 일은 하지 않는 건가? 실력이 좋으니 경호원은 될 텐데."
"기와는 벨 수 있지만 사람을 베는 건 싫다네."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설영이 말했다. 그 표정이 어딘지 노지심의 마음을 움직였다.

"난 노지심이라 하네. 화화상이라고도 불리고 있지. 여행을 하는 중인데 같이 가볼 텐가?"
"여행을 가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야산을 걷는다네. 좋은 약초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약초라는 말에 설영의 눈이 반짝였다.

"안되겠어. 빈털터리거든."
"난 중이야. 먹는 건 어떻게든 될 테지."
"그렇긴 하네."

설영이 생각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노지심은 그 이상 강하게 말하진 않았다.
고향에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번 무송을 만나야 한다. 편지에선 강한 척 말하고 있지만 어딘가 꺾일 듯한 점이 보인 것이다. 조개가 무송에게 한 말을 듣고서 조금 대하는 방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밖으로 나왔다. 저녁때가 되자 가을 분위기가 돌기 시작했다. 세월이 빠르구나 하고 노지심은 생각했다.


천미성(天微星)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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