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천미성(4) 북방수호전


"어이, 구문룡."

묶여서 넘어져있던 진달이 얼굴만 든 채로 말했다.

"너는 분명 강하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강한 거냐. 우리를 방해하기 위해서냐?"
"패한 녀석이 큰소리치지 마라."
"확실히 나는 손도 못 써보고 당했지. 이런 일은 처음이야. 하지만 부끄럽진 않다. 난 너와 싸우기 위해 산을 내려온 게 아니야. 화음현 관청을 공격하기 위해서지. 그걸 네가 방해한 거다."

노지심이 진달에게 다가가 상체를 일으켜주었다. 진달은 손이 뒤로 묶인 채 앉은 모양새가 되었다.

"주무와 양춘이라는 내 형제가 사가촌에는 구문룡이 있다며 막았다. 하지만 나는 화음현 관리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어. 뇌물로 제 주머니를 채우는 것도 모자라 작년 공물로 바칠 쌀까지 속였지. 정말 용서할 수 없는 놈들이야. 사람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고 있는 거다."

진달은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너는 그런 관리들을 지키는 게 자랑이냐?"
"지킨다고?"

사진은 순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화음현 관리에게 지켜줄 가치 따위는 없다.

"지킨 게 아니라면 뭐냐? 우리가 사가촌 물건에 손을 댔나? 썩어빠진 관리들을 털어버리기 위해 단지 이곳을 지나고자 했을 뿐이다. 그걸 네가 방해했지. 관리를 지킨 게 아니라면 뭘 지켰다는 말이냐, 구문룡?"

사진은 말을 잃었다. 분명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다. 관청에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도적과 싸울 생각을 하는 마을은 없을 것이다. 관청을 위해 무슨 일인들 해봐야 뇌물은 뜯어가고 공물은 속여넘긴다.

"나는 도적이란 걸 용서할 수 없다, 진달."
"웃기지 마라. 우리와 관리 중에 어느 쪽이 도적이란 말이냐? 당당하게 도적질을 하는 관리를 지키는 넌 우리보다 더한 도적이겠구나."
"더는 말하지 마라, 진달. 목을 날려버릴 테니까."
"그래, 죽여라. 이런 세상 살아봐야 무슨 가치가 있겠냐. 관리들을 혼내주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너 같은 놈을 만난 나한테 운이 없었던 거겠지."
"죽는 것이 두렵지 않나?"
"두려워 해서야 관청을 습격할 수 있겠냐? 소화산에 들어갔을 적부터 난 목숨을 버렸다."

사진은 울컥해서 얼굴이 붉어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무술로는 이겼지만 말로는 졌다.

"너 말고도 두 명의 수령이 더 있는 것 같더군, 진달."
"관리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가촌에 구문룡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은 거지. 난 조바심이 나서 혼자 출진한 거야. 그래, 아까 목을 날려주겠다고 했지. 어서 그리해다오."
"왜지?"
"두 사람은 형제나 마찬가지다. 내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면 날 구하러 올 거야. 하지만 널 이길 수 있는 실력은 없어. 그럼 붙잡히거나 죽을지도 모르지. 내 급한 성격 탓에 두 사람에게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두 사람은 나를 두려워하는 건가?"
"그것과 형제인 점은 별개의 일이야. 나라도 구하러 갈 거다."
"이제 됐어. 얌전히 있어라."
"기다려, 구문룡. 난 죽어야 돼. 어서 목을 쳐라."

사진은 고함을 지르는 진달에게서 등을 돌리고 집쪽으로 걸었다. 노지심이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생각해 볼 만한 때로군, 사진 님."

중얼거리듯 노지심이 말했다.

"뭘 생각해볼 때라는 말씀이십니까?"
"왕진 님이 말씀하셨던 것의 의미를."

사진은 더 이상 노지심과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진달은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지만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방에는 십여 개의 봉이 걸려 있다. 철제로 된 것도 있다. 대부분은 철제로 된 것을 휘두른다.
강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강해졌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강해진 지금은 그것을 알 수 없게 되버렸다.
남들처럼 익숙해졌다. 불만도 있었다. 관청에 바칠 공물을 모으고 있을 때면 정치가 좀 더 좋아졌으면 하고 여러 번 생각했다. 수확의 상당 부분을 바쳐야만 하는 걸 아버지가 가슴 아파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지켜봤다.
난 무슨 짓을 한 건가. 분명 도적이 마을을 지나가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그걸로 이득을 본 자는 누구인가. 습격당할 뻔했던 관리들이 아닌가.
실전에서 봉을 휘둘러 보고 싶었다. 도적이라면 괜찮은 상대였던 거다. 때려죽인다고 해봤자 도적일뿐. 그런 기분이 마음속 어딘가에 없었던 걸까. 무술뿐인 인간이 되지 말거라. 왕진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의 무술을 뽐내며 자랑하려는 생각뿐이지 않았나.
이겼지만 남은 것은 씁쓸함뿐이었다.

"제길, 내가 도적이라고."

사진은 중얼거렸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진달에게 생각지도 못한 욕을 들었다.
술을 마시고 잊어버리자고 사진은 생각했다. 이것저것 생각에 빠지는 것은 나답지 않다.
사진은 손뼉을 쳐 하녀를 불러 술을 가져오라 명했다. 진달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2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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