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천미성(1) 북방수호전


천미성(天微星)

1.
더운 계절이 되었다.
물 걱정이 있었지만 이틀 동안 큰비가 계속되어 강의 수량이 늘어났다. 논밭에 물댈 걱정은 일단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사진은 농경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하지만 물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고 가끔은 강에까지 나가 상태를 살펴보곤 했다.
아버지 사예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두 달 전 아버지 사예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집에서 쓰러진 뒤 이틀 동안 코를 골며 잠들어있다가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사진은 아버지와 아무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늦게 태어난 아들인데다가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애지중지하며 키웠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갖고 싶어 한 것도 대부분 주어졌다. 어려서부터 봉술 스승도 붙여주었다. 보통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이상의 것을 해주었지만 사진은 아들로서 어떠한 효도도 하지 않았다.
물 걱정이 사라지자 사진은 다시 무위(無為)의 삶으로 돌아갔다.
농경의 지휘는 모두 사촌 형인 사연(史延)이 맡고 있다. 보정(保正)이 되어야 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사연이다. 자신이 보정이 되어 사연의 보좌를 받는 것보다 그냥 모든 것을 맡기는 편이 나은 것이다.
한 번은 사연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고사했다. 사진이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안심하고 농사일에 힘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적들이 활개치고 있지만 사가촌이 습격당한 적은 없다. 예전에 도적들을 때려눕힌 적이 있는데 그게 과장되어 전해졌을 것이다.
암울했다. 한나절 봉술 연습을 하고 나면 그밖에 할 일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제아무리 봉의 수련을 해봤자 그것을 살릴 곳이 없다.
사연에게서는 매일 논밭의 보고를 받는다. 같은 보고인 것 같지만 한 달 전과 비교하면 미묘하게 다르다.
이 무슨 완만함인가. 작물이 싹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그 시간의 흐름은 사진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순간의 승부와 하나라도 통하는 것이 있는 걸까.
손님이 온 것은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 오후였다.
노지심이라는 이름을 밝힌 거한의 중이었다. 행동에 빈틈이라고는 없다. 사진은 오랜만에 상대할 만한 연습 상대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왕진 님에게서 편지를 받아왔네."

객실에 들어선 노지심이 품에서 편지를 꺼냈다. 왕진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사진의 마음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되살아났다.

"선생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자오산(子午山)의 산기슭에 계시네. 모친과 함께 청경우독의 나날을 보내고 계시지."
"그렇군요. 어머니께서도 건강히 잘 지내시죠?"
"더없이 좋으시네. 산의 생활이 몸에 맞으시는 것 같더군."

사진은 노지심이 건네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무술이 무술로서만 존재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 편지는 그렇게 쓰여있었다. 난 그런 무술 밖에 익히지 못했다. 너는 무술을 살려서 뭔가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가혹한 수행을 쌓은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리되면 비로소 내 무술에도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 난 지금 산중에서 평온한 생활을 보내고 있지만 네 생각이 자주 나는구나. 만약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난 무술을 가르친 것을 후회할 것이다. 앞을 바라보고 세상으로 나아가거라. 그래서 몸에 익힌 무술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다오.
그런 말들이 쓰여있었다. 사진은 다시 반복해 읽었다. 암울한 나날이란 단어가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자오산인가."

사진은 편지를 접어넣고 노지심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자오산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치솟았다. 하지만 왕진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제 가르칠 것은 없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할 것이다. 그런 스승이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아버님께서는 잘 지내시는지 왕진 님께서 궁금해하시더군."
"돌아가셨습니다. 두 달 정도 전에요. 이야기할 틈도 없이 병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죠. 억울하고 아쉽지만 이젠 이것도 사람의 운명이라 생각하려고 합니다."
"아버님에 대해 그리운 듯이 말씀하셨네."
"원래 선생님은 아버지의 손님이셨거든요."

사진은 하녀를 시켜 술과 안주를 가져오도록 했다.

"며칠이든 여기서 묵어가세요, 노지심 님. 시골이라서 대단한 요리 같은 건 못하지만 고기라면 얼마든지 준비해뒀으니까요."

손님이 있다는 게 그저 기뻤다. 왕진의 편지를 전해준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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