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지폭성(10) 북방수호전


"일어서. 다음은 오른쪽 어깨, 가슴, 명치 순으로 간다. 피하지 못하거든 자신이 약하다는 걸 받아들이도록 해라."

오른쪽 어깨를 찔렸다. 가슴도, 명치도.
포욱은 숨을 고르고자 웅크린 채로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턱 끝에 맺혀있던 눈물이 메마른 땅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강해지고 싶으냐, 포욱."

포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지?"
"나 사나이니까."
"네가 사나이인가. 노지심이 말한 대로 그저 짐승 아니냐?"
"사나이가, 되고 싶어."

깊은 곳에서부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나이가 되고 싶어.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알았다. 그럼 지금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을 말해주마. 아침밥을 먹고 나서는 농삿일에 전념해라. 그곳의 숲을 개척해서 밭을 좀 더 넓히고 싶거든. 그리고 저녁밥을 먹고 2각(30분) 동안은 어머니에게서 글자를 배워야 한다. 어느 정도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면 나와 함께 책을 읽는 거야. 책을 읽고 인간이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할 수 있겠느냐?"
"알았어."

다시 어깨로 봉이 날아들었다.
어깨로 봉이 날아들어왔다. 온몸이 저려와서 포욱은 잠시 움직일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거야. 넌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구나. 어머니께선 자상하게 가르쳐주시겠지만 난 봐주는 건 없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때려눕혀주마."
"나는."
"저는, 이라고 하는 거다. 나라고 하던 넌 지금부터 버리는 거야, 포욱."
"저는, 이라고 하면 돼?"

다시 어깨에 봉이 날아왔다.

"말하면 됩니까. 이런 식의 말을 익혀두거라. 글자 외우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괜찮지만 말은 지금부터 고쳐나가도록 해."
"알았어."

다시 봉이 날아왔다. 네, 하고 말하라는 왕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포욱은 네, 하고 말했다.

"좋아. 이제 밭의 돌을 골라내 치우도록 해라. 저녁식사 전에 일각은 봉 연습을 시켜주마."

포욱은 땅에 엎드렸다. 손으로 흙을 파고 하나하나 돌을 골라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돼. 대나무로 바구니부터 만들자. 도랑을 판 다음 체에 거른 흙은 거기에 부으면 돼. 남은 돌은 다른 바구니에 모아뒀다가 골짜기에 버리는 거야."

계속해서 도랑을 팠다. 무릎길이까지 너비는 1장(2.2미터) 정도로 길이는 20장 정도였다. 둘이서 저녁때까지 팠다.
그리고 봉 연습을 한 1각은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다. 왕진은 피곤한 기색도 없다. 봉을 쥔 포욱의 빈틈을 노려 사정없이 두들겨댔다. 필사적이었다.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훈련이 끝나고는 계곡물을 끌어다 몸을 씻었다.

"아프냐, 포욱?"

어, 라고 대답하려다가 네, 하고 다시 말했다.
쌀밥과 얼마 안 되는 말린 고기, 산나물로 된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맛있다. 포욱은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보는 것 같았다. 왕진의 어머니가 당신 몫의 말린 고기도 포욱에게 주었다. 포욱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넌 어리니까 나보다 배가 고픈 게 당연한 게야. 내 몸은 이제 고기 같은 건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러니 사양 말고 먹으려무나."

어머니의 말에 왕진은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포욱은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식탁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오늘 두번 째 눈물이다. 요 십 년 동안 눈물 같은 건 흘려본 적이 없었다.

"이 아이는 눈물을 흘릴 수 있단다, 왕진. 그것도 얼마 안 되는 육포 때문에. 절대 악한 아이가 아니야. 지금까지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와서 그럴 뿐이란다."
"봉을 잡았을 때는 아직 짐승이에요."
"사람을 무술 만으로 판단하는 건 네 큰 단점이다. 아무도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다면 너도 마찬가지였을 게야."
"어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쳐주세요. 전 무술을 조금씩 가르칠 겁니다. 개간도 하고요. 지금의 밭을 배로 늘린다면 이것저것 기를 수 있을 테고 이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거에요."
"난 천천히 차분하게 가르칠 거란다, 왕진. 이 아이에겐 가르치는 쪽이 인내심을 가지고 있어야 해."
"어머니 뜻대로 해주세요."

자신에 대한 걸 얘기하고 있다. 그것도 거꾸로 매달아놓고 토막 내어 죽이자거나 손발을 자르자는 얘기가 아니다. 뭔가 좀 더 다른,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것을 시켜보자는 그런 얘기다.
식사를 마치고 포욱은 방의 책상 앞에 앉았다. 종이와 붓이 준비되어 있다. 벼루로 먹을 가는 법을 먼저 배웠다. 힘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담아 천천히 갈아야만 한다.
그리고서 붓을 쥐는 법. 어머니는 종이에 커다랗게 포욱이라고 썼다.

"이게 네 이름이란다. 알겠니?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순서대로 써보렴."

자신의 이름 정도는 보면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직접 쓰게 되면 한 번 보고 하나 쓰고 또 한번 보고 하나 쓰는 식으로 잘되지 않았다. 중간부터는 어머니가 손을 쥐고 도와주었다. 주름지고 여윈 손이지만 포욱은 왠지 온몸이 뜨거워졌다. 자신이 쓰는 건지 어머니가 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끝에 제대로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다시 도움을 받아 3번 쓰고 그리고나서 혼자서 3번을 썼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썼다.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이는 것을 기억했다.
혼자 제대로 썼을 때는 기쁨과 피로가 함께 몰려왔다.

"잘 썼구나, 포욱. 내일은 이걸 혼자 써보도록 하자꾸나."
"네, 어머니."

포욱의 말에 어머니는 손에 입을 가져다 댄 채 웃었다.

"이런 할미에게 어머니라니, 또 고마운 말을 해주는구나. 그렇구나, 왕진이 그렇게 부르니까 너도 따라 부르는 거로구나. 그래, 이제부터 날 어머니라고 부르려무나."
"네."

어머니는 벼루나 붓을 씻는 법을 알려주고는 방을 떠났다.
자신의 방. 그런 게 생긴 것도 포욱으로선 처음 겪는 일이었다. 입을 옷도 깨끗하게 세탁한 2벌이 깔끔히 개어져 방구석에 놓여있다.
다음 날, 도랑을 파고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돌없는 흙으로 채워나갔다. 고통스럽진 않았다. 어디선가 뭔가 하고 있다는 기분이 느껴졌다. 이런 것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점심때 포욱은 손끝으로 자신의 이름을 여러 번 써보았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네가 와준 덕분에 작업도 순조롭구나. 이 정도면 씨를 뿌려 올해 수확할 수 있는 밭이 될 것 같다."
"네."
"좀 더 좋은 걸 먹게 해주고 싶구나. 밭에서 수확할 게 생기면 그걸로 돼지나 닭을 교환하자. 그걸로 계란도 얻을 수 있고 새끼 돼지도 키워서 장에 내다 팔 수 있어."
"네."
"물건은 그렇게 움직이고 사람은 그런 물건을 움직이면서 살아간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니, 듭니다."
"허둥댈 것 없다. 넌 젊고 시간은 아직 충분할 정도로 많으니까."

오후 작업에 들어갔다. 포욱은 저녁식사 후의 글씨 연습이 기다려졌다. 어머니가 도와주지 않아도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다.
어머니가 분명 칭찬해 주실 거야.

지폭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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