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지폭성(6) 북방수호전


"그런데 좋은 곳이군요. 이 고요함이 부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연안부의 지인이 이곳을 보살펴줬네. 다행히 어머니도 마음에 들어 하셨지. 책 같은 것들도 그 사람이 옮겨준 걸세. 이제 난 아침이면 봉을 휘두르고 낮에는 밭을 일군다네. 잘 지내고 있지. 허나 솔직히 이걸로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네."

아침 식사도 모친이 준비하는 것 같다. 뭔가 칼로 잘게 써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께선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예순여섯. 큰 병도 없으시고 여기 물이 잘 맞는 것 같기도 해."

포욱은 어쩔 줄 모르겠는지 차에는 손도 대지 않고 가만히 쭈그려 앉아 있다. 짐승적인 본능으로 왕진을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쪽은 산속에서 만난 포욱이라고 합니다."
"식기 전에 차부터 들게."
"차 같은 건 마셔본 적 없을 겁니다, 이 녀석."
"허어."
"예절도 모르고요."

포욱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왕진 님은 자신의 무예가 세상을 바로잡는 데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셨죠."
"내 무예는 지나치게 안으로 향해 있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라 미안하네만."
"아뇨, 알 것 같습니다."

왕진이 구하고 있는 것은 아마 경지(境地)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일 터. 그것에 승패나 강약은 아무 상관이 없다. 노지심은 그랬기에 자신이 끌렸던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바로잡는 데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에는 잘 어울리신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인가."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왕진 님의 무술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분명 그렇겠지."
"왕진 님, 포욱을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그럴 생각으로 여기까지 데려온 건 아니지만 뵙고 나니 그런 마음이 들더군요."
"거친 것과도 조금 다른 것 같네만."
"여덟 살에 부모를 잃고서 훔치거나 사람울 죽이며 살아남은 것 같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자각도 없죠."
"그렇다면 괴롭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것도 아니겠구먼."
"짐승이지만 이 나라가 낳은 짐승이죠. 글자도 모릅니다."
"어떤 식으로 맡아주면 되겠나?"
"어떤 식으로든요. 저는 왕진 님께 이 녀석을 맡기는 걸로 한 번 더 태어나게끔 하고 싶습니다. 그 뒤에 어떤 식으로 태어날지는 이 녀석 하기 나름이죠."
"그렇군. 다시 한번 태어난다라."

왕진이 미소 지었다. 노지심은 그것이 대답이라고 받아들였다.

"포욱, 널 이분께 맡길 거다. 무엇을 가르쳐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넌 여기서 지내도록 해."
"그건."
"불평은 하지 마. 약속이라고 말했었지. 그걸 어기는 건 부끄러운 거라고."
"내가, 여기 살면 되는 거야?"
"그래. 명하시는 거라면 뭐든지 해. 죽으라 하시면 죽는 거야. 왕진 님, 이 녀석이 잘 곳은 처마 밑이면 충분합니다. 밥값(餌代)은 드리고 갈 것이니 굶어죽지만 않게 해주십시오."

노지심은 노준의에게서 받은 노자의 일부를 왕진 앞에 꺼내놓았다.

"노지심 님, 그 무슨."
"밥값이죠. 돈과 무관하게 살아선 안됩니다. 그건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걸 잊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알겠네. 허나 너무 많군."
"그렇다면 누군가를 더 보내겠습니다. 왕진 님의 무술은 사진에게만 전수하고 말면 좋을 게 아니니까요."
"허어, 사진도 알고 계시는가, 노지심 님?"
"이제부터 사가촌으로 가서 만나볼 생각입니다."
"사진이 나처럼 옹졸한 무술가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危惧)하고 있었다네. 노지심 님과 만나본다면 어느 정도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왕진 님과 비교하면 저는 파계승 냄새가 풀풀 나죠. 왕진 님이 출가하시는 게 더 나을 정도일걸요."

왕진이 소리 내어 웃었다.
아침밥 준비가 된 것 같다. 모친의 목소리가 들렸다.

"포욱, 훔치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어."

노지심이 말해도 포욱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2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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