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천웅성(10) 북방수호전

소선풍 시진

"오오, 대단하십니다. 역시 금군 창술사범. 귀한 걸 보여주셨습니다."

시진의 목소리에 임충은 자신을 되찾았다.
관자놀이를 가볍게 찌르는 것만으로 홍 사범은 어이없이 죽었을 것이다. 임충은 그를 죽이려던 자신의 기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시진의 목소리가 자신을 구한 것이다.
제자들이 홍 사범을 들쳐매고 떠나자 다시 주연이 시작되었다. 임충은 연달아 질문을 받았지만 모두 짤막하게 답했다.
이윽고 하나 둘 술에 취해 쓰러지고 임충은 침실로 안내받았다. 시진이 홀로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동지(同志)요. 임충이라 불러주시오."
"나도 시진이라 부르게."
"시험해보는 짓을 했지만 신경 쓰지 말게. 다들 소선풍(小旋風)이라면 할 법한 짓이라고들 생각할 테니까."

시진이 소선풍이라 불린다는 것은 노지심에게서 들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대단한 실력이군. 제자들이 물건마냥 공중에 날아올랐을 때는 꿈이라도 꾸는 건가 싶었다네."
"자네도 제법 하지 않나."
"놀라운걸. 알 수 있나? 분명 검은 조금 쓰지만 평범해. 무술이라면 난 이 이상 가진 못할 거야."
"그걸 안다는 걸 평범하다고 하진 않아."

임충을 바라보던 시진이 살짝 웃었다. 어린아이 같은 미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옥에서의 생활은 역시 힘들었나?"
"지하였으니까."
"그곳에서 살아 나온 사람은 없다고 들었네만."
"난 살아 있어."
"허나 어딘가 거칠군그래. 홍 사범을 죽일 뻔했어."
"거칠어졌다면 그건 감옥에서 때문은 아니야.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알겠네."

시진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 등유의 불빛이 시진의 얼굴을 흔들었다.

"먼저 창주 감옥에 대해서. 장관과 옥리에게 편지를 써뒀네. 이걸로 어느 정도는 괜찮으리라 생각하지만 정말 도움이 되는 건 돈뿐일세."
"알고 있어. 이 나라는 다 그러니까."
"돈은 자유롭게 해주지. 감옥 안을 맘대로 움직일 수 있네. 다시 말해 힘든 노역에 끌려가거나 유폐되거나 하는 일은 없다는 거야."
"고맙군. 가만히 있기보단 뭔가 하고 싶어."

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임충 앞에 편지를 내려놓았다.

"그래서, 안도전이라는 의사 말이네만 임충."
"난 얼굴도 모르는데."
"걱정 말게. 감옥 안에서도 의사 일을 하고 있어. 뭐, 노역에 동원되는 것과 같은 의미지. 혼자 뿐인 의사니까 바로 알아볼 거야."

이번에는 임충이 고개를 끄덕였다.

"탈옥한 후에는 내게 맡겨주게."
"알겠네."
"안도전은 조금 별난 데가 있는 것 같아. 의사를 할 수만 있다면 어떤 곳이든 상관없다는 것 같더군. 다시 말해 감옥도 지내기 나쁘지 않다는 얘기지."
"뜻으로 설득해도 통하지 않을 상대인가?"
"알 수 없어. 안도전을 만나보고서 방법을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네. 실력 좋은 의사가 필요하다는 건 조개 님도 같은 의견일세. 안도전은 확실히 누구보다도 실력 좋은 의사거든."
"어떻게든 해보지."
"하나만 더. 이건 확증이 있는 건 아니네만, 개봉부의 고구가 자네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아. 자객을 조심하게."
"고구답군.
"내가 전할 건 이것뿐이야. 여기 창주 인근 지도가 있네. 내 별장 4곳의 위치를 기억해두게. 탈옥하고 나선 그중 어딘가로 도망치면 돼."
"역시 명족의 집답구만. 별것 아닌 지주들 따위와는 비교도 안돼."
"난 싫다네. 이름난 집안에서 태어나, 이름난 집안의 아들로서 자라온 내 자신이. 동계촌의 조개 님과 만났을 때도 이 얘길 했지. 조개 님도 보정이니까 말이야."
"난 아직 조개라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네."
"웃었어, 그 사람은. 명가의 긍지 따위는 백성이 흘린 피와 비교하면 쓰레기나 다름없는 거라고. 버리기 아깝기는커녕 방해가 될 뿐이니까 내버리는 게 좋다고 말했지."
"백성이 흘린 피인가."
"이름도 없이 죽어간다. 그때부터 그것도 사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됐어. 지금은 아직 시대관인(柴大官人) 따위의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름 없는 사내로서 죽고 싶네. 그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나서지만."
"지켜봐 주지, 시진이 어떻게 죽는지를."
"왠지 모르게 좋아질 것 같은 사람이군, 임충."
"낯간지러운 소릴. 어떻게 그런 말투를 할 수 있지?"
"명가의 당주니까 말이야. 선조가 대주(大周) 황제거든."

시진이 다시 살짝 웃었다.

"내 아내는,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목을 매고 죽었어. 내가 죽인 거나 다름없지."
"그만두게, 임충.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거잖나."
"그렇군."
"아무튼 자네가 조심해야 하는 건 고구의 자객 뿐이네. 요(遼)나 서하(西夏) 같은 외적을 안고 있건만 그런 하찮은 사내가 군의 수뇌라니."
"고구는 하찮은 인간이지만 군에는 그 동관(童貫이 있어. 게다가 가리지 않고 아무나 받아들이는 채경이라는 괴물이 있지. 만만하게 봐서는 안돼."
"그래. 그런 말투면 돼. 그리하면 표자두라는 이름도 딱 들어맞아. 자네는 토라진 말투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 사내라고."
"조심하도록 하지."

시진은 아직 더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임충이 졸립다고 하자 포기한 듯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갔다.
혼자가 되고서도 오랫동안 임충은 잠들지 못했다.


천웅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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