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천웅성(1) 북방수호전

천웅성(天雄) 임충

1.
빛이 없었다.
옥졸(牢番)이 있는 곳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등불만이 유일한 불빛이었다.
식사가 뭔지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분뇨는 사흘에 한번 항아리를 버리러 간다. 그것도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지하 막다른 곳에 흐르는 하수에 분뇨를 버리고서 흐르는 물에 항아리를 씻는 것이다.
그런 감옥이 십여 개 정도 있는 것 같았지만 가끔 신음소리만 들려올 뿐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취조(取調)를 위해서인지 끌고 가는 자가 때로 있었지만 돌아올 적에는 바닥에 질질 끌려서 돌아왔다.
임충은 처음 때처럼 자주 취조를 받진 않았다. 입 밖으로 한마디도 내지 않고 고문을 견뎌냈다. 그리고는 이 감옥으로 옮겨졌고 거의 방치되고 있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 어둠을 응시했다. 수일, 아니 수십 일이 지났을까. 고문으로 생긴 상처도 어느덧 아물어가고 있었다. 생각하는 것은 뜻에 대한 것뿐이었다. 이 나라를 바꿔보겠다는 뜻을 품었다. 썩지 않은 나라를 만들어보려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고통이나 괴로움도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때로 갑작스럽게 장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흰 몸과 유방이, 엉덩이가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생각에 참을 수가 없어서 앉아 있지 못하고 축축한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렇게 신음하고 있다 보면 질릴 만큼 능욕했다던 고구의 말을 떠올렸다. 고구는 그것을 구경거리 삼아 즐겼다. 괴로움마저 마음 속에서 죽었다. 숨을 멈추고 그대로 죽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이 되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자신은 장람을 사랑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더는 장람에게 그 사실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을.
뜻이란 무엇인가. 그런 때는 생각한다. 뜻 따위가 있었기 때문에 장람에 대한 사랑을 깨닫지 못한 거라고. 장람이 죽고 나서 깨달아봤자 그런 건 깨닫는 게 아니다.
살아남아야 하는가.
물이나 음식을 거부해도 죽을 수 있다. 그러지 않는 것은 뜻이 방해하고 있기 때문일까.
어려서부터 창의 수행을 계속했다. 그 창을 어디서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방랑을 시작했다. 하지만 창 하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송강이란 사내를 만나게 됐다.
송강은 창의 기량을 어떻게 살려야 마땅한 것인지 스스로가 생각하게 해주었다고 임충은 생각한다.
하지만 이 감옥 속에서 창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저 살려두고만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이미 목숨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이 나라를 바꾸기 위해 자신의 창이 쓸모가 있다.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있을 때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람의 모습이 한번 떠오르게 되면 그런 것은 사라져버린다.
장람은 죽은 여자다. 몇 번이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여자다. 환상일 뿐이다. 지금은 그 이외의 무엇도 아니다.
임충은 하루에 여러 번 거꾸로 선 채 양팔 만으로 몸을 떠받쳤다. 천천히 수를 세고 반각을 그대로 버틴다. 그리고 한쪽 다리로 서서 무릎을 구부린다. 똑같이 반각을 버텼다.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선 처음에는 몸이 안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집중할 수 있었다. 익숙해질수록 거꾸로 선 채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가 또 몸부림을 친다.
살아남아야 하는가.
그 자문마저 하지 않게 되는 때, 난 아마 죽는 거겠지. 그 전에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가끔 탈옥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마루는 흙이고 벽은 돌이다. 도구는 아무것도 없다.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분뇨가 담긴 항아리를 씻으러 나올 때뿐이다. 그 하수 길도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옥졸을 덮치는 것도 어렵다. 식사는 작은 문을 통해 들어올 뿐이고 지하에서 올라간 곳이 옥족들으의 대기실인 것 같았다. 진짜 감옥은 이곳 위에 있다. 그리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해도 금군부의 한 가운데로 밖에 나올 수 없다.
어느 때부터 자연스럽게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게 됐다.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는다. 떠오르는 것들을 모두 떨쳐낸다. 때로는 하루 종일 그렇게 있기도 했다. 하루에 한번 식사가 나오고 다음 식사가 나오는 것으로 그걸 알았다. 그러나 이틀째 계속 그렇게 있을 순 없다.
장람의 얼굴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다. 그렇게 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나날이 계속되는 것이다.
분뇨를 버리는 날도 아닌데 감옥 문이 열렸다. 옥졸의 병사 하나가 불빛을 들이밀었다. 눈부심에 임충은 눈을 꽉 감았다.
양 발목에 쇠사슬을 채운 채 안기듯이 해서 걷게 했다. 그동안에도 임충은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어도 햇빛 속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곧 건물로 들어가 앉혀졌다. 통풍이 잘 되는 방이라고 생각했다. 지하의 감옥은 거의 공기가 움직이질 않았던 것이다.
살짝 눈을 떴다. 그리고 감았다. 몇 번을 반복하자 겨우 눈을 뜨고 있을 수 있는 상태가 됐다.
방에는 병사 여섯이 있었다. 전에 신문당했던 곳이라고 임충은 생각했다. 어느 정도 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하 감옥에 얼마나 있었는지 애매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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