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천죄성(5) by 뇌세척

탁탑천왕 조개

3.
도중에 배를 타고 오장하(五丈河)를 내려갔다. 정도(定陶)까지 등유를 운반하는 배였다.
오장하(五丈河) : 강의 너비가 5장이라 하여 오장하라 불렸으며 북송 시절 북동쪽 일대의 곡식은 주로 이곳을 통해 경성으로 운반되었다고 함.
노지심은 그다지 배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강물 위의 배는 멀미가 나서 더 거북했다.
하지만 개봉부에서 운성으로 가는 여행에는 배를 이용했다. 물살을 탄 배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그곳을 오가는 배를 보고 있다 보면 물자의 흐름도 알 수 있다.
정도에서 이틀에 걸쳐 운성 근처까지 걸었지만 거리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송강과의 약속 장소는 양산호에서 5리 정도 떨어진 산위에 있었다.
그곳으로 가기 전에 노지심은 양산호의 호숫가를 걸었다. 가끔 어부가 사는 것으로 보이는 집 말고는 수풀이 물가를 거의 가려주고 있다.
양산호는 바다 정도의 파도만 없을 뿐, 넓어서 밀주(密州)의 바다와도 비슷했다. 물의 퍼져가는 모습이 노지심의 마음속 씁쓸함과 뒤섞여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 밀주는 노지심의 고향이었다. 출가한 뒤로는 각지를 방랑했으나 2번째 고향은 송강과 만난 이곳 운성이다.
수면에서 뻗어 나온 언덕 위로 자그마한 집이 있었다. 검소하지만 가난한 살림살이는 아닌 듯 보였다.
약속 시간은 내일 정오이기 때문에 묵을 곳이 필요하던 참이다. 집에는 노파와 하녀뿐인 것 같았다. 노지심의 커다란 몸집을 본 하녀는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노파는 온화하게 웃으며 맞아들여주었다.

"제게도 아들 셋이 있답니다. 셋 다 손도 못 댈 정도의 무뢰배들이지요. 지금은 조금이나마 온순해진 것 같기도 하지만요."
"전 젊었을 적에 운성의 절에서 수행을 했더랬지요. 이 주변까지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양산호는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군요."
"그런가요? 스님께선 운성에서 수행을 하셨나요?"
"그러고서 나라를 떠돌았지만 좀처럼 속세 기운을 버리질 못해서요."
"그건 아직 스님께서 떠나실 날을 마중하지 않았기 때문일 테지요."

노파는 변함없이 온화하게 미소 짓고 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식사 준비를 위해 하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통근하며 이곳으로 오는 모양이었다.

"전 조금만 먹으면 괜찮은데 아들이 하녀에게 많이 만들게끔 해둬서 말이에요. 항상 버리고 있었는데 오늘 밤은 헛되이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생선찜과 채소가 나란히 나왔지만 노파는 실제로 얼마 안 되는 양만 입에 넣었을 뿐이다. 욕심스럽다 싶으면서도 노지심은 남은 음식을 전부 뱃속에 밀어 넣었다.

"아드님은 돌아오지 않으십니까?"
"이 앞으로 2리 정도 떨어진 곳에 오두막을 짓고 살고 있어요. 갈대 속에 대나무로 짠 다리를 걸치고 물 위에 오두막을 만든 거지요. 전 기침하는 병이 있어서 습한 곳에서는 살지 못한답니다."
"어부 일을 하고 계십니까."
"첫째와 막내는 그래요. 둘째는 여행을 떠났지요."
"그렇군요. 세 아드님이 일을 하셔서 형편이 괜찮으신 거군요."
"이 나이가 되면 그런 건 바라지 않지만요. 오가는 하녀와 이야기 나누는 게 매일의 위안이랍니다."
"그것도 괜찮은 인생이지요."
"가난해도 평온하게 살아가고 싶었지요. 하지만 몇 년 전에 남편이 죽은 뒤로 아들들은 그저 난폭해지기만 하더군요. 물고기를 잡아서 제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지만 전 그저 아이들 먹을 밥을 짓고 기다리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었어요."

노지심은 노파의 미소 속에서 희미한 체념을 눈치챘다. 그건 노인이 지을 법한 아픈 것이 아니었다.

"기침병이라고 하셨습니다만."
"1년 정도 전에 기침과 함께 피가 섞여 나온 걸 아들이 알아채고는 이곳에 옮겨와서 살고 있어요. 확실히 물 위에서 살아가는 건 괴로운 일이었지만 가능하면 그곳에서 살다가 죽고 싶었답니다."
"삶의 마지막은 바란다고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대부인.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 마지막을 정해주지요.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누군가 지켜보고 있던 것처럼요."
"이런, 스님께 진기한 말씀을 들었네요."

노파는 변함없이 온화하게 미소 짓고 있다.
방에는 숯이 있어 따스했다. 언덕 위라서 습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노파가 기침을 하며 천으로 입을 눌렀다.
불합리한 삶의 마지막도 있다. 아니, 이 세상 죽음의 대부분은 불합리하다고 해도 좋다.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도 그랬듯이.
노파의 기침은 한동안 이어졌고 그 사이에 주름이 새겨진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다음 날 아침, 바깥의 소리에 눈을 떴다. 손님이 일어나버린다며 노파가 누군가를 나무라고 있다.
노지심이 밖으로 나오자 자그마한 청년이 서있었다.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잘 모르겠다.

"이야아, 손님. 난 매일 아침 우리 엄니께 잉어 피를 보내드린다오. 내가 잡은 잉어 피지. 엄니는 마시는 걸 싫어하시지만."
"싫어하는 게 아니란다. 이 어미가 마시지 못할 정도를 가져와도 소용없을 뿐이라는 얘기야, 소칠."

이름을 듣고서 어쩐지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확실히 생김새가 많이 닮았다.

"완소오와는?"
"어라, 작은형을 알고 있소? 어부일을 싫어해서 여행을 떠났지. 가끔 엄니께 돈 같은 걸 보내오는데 제대로 살고 있는 거요?"
"그렇다네. 변하에서 석탄 나르는 배를 움직이고 있어. 거기서 석탄을 운반하는 건 실력 좋은 사공이란 걸세."
"흐음, 배란 말이지."
"스님께선 소오와 만나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며칠 전이었습니다. 개봉부 교외에서 고기를 얻어먹었지요."
"건강하게 지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세상 보기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거야 뭐, 개봉부에서 사주로 석탄을 운반하는 일이니까요. 양산호에서 고기를 잡다 보니 더 큰 배를 타고 싶어졌다고 하더군요."
"그런가요. 큰아들 소이는 평범하게 자라주었지만 셋째 소칠은 이대로 양산호의 산채 도적패에 끼겠다는 둥 하고. 소오는 한창 다감(多感)할 적에 제 손을 떠나보낸 적이 있어서요."
"완소오 님의 일은 위험하지만 훌륭한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요."
"그게 뭐야. 관리를 위해 일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 나라면 그 배를 관리나 상인을 털어서 가득 채워줄 건데 말요."
"얘야, 소칠."
"엄니도 잘 기억해둬요. 소오 형님은 제껴놓고, 소이 형님도 나도 관리를 위해서 따위는 못 살아요. 하지만 엄니를 위해서는 살 수 있어.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서도."

외치듯 말한 완소칠은 쏜살같이 달려가버렸다.

"면목이 없네요. 활염라(活閻羅) 따위 별명으로 불리며 소란 피우는 걸 좋아해서 언젠가 관리와 싸우는 건 아닌지 전 살아있는 것 같지도 않답니다."
"아닙니다. 완소칠 님은 견실한 이야길 했어요. 관리를 위해서 살 수는 없지만 어머님을 위해선 살 수 있다니, 이건 인간으로서 훌륭하지 않습니까."
"그럴까요, 스님. 삼형제 중에선 가장 난폭하지만 제겐 가장 다정한 아들이기도 하답니다."

완소칠이 가져온 작은 항아리 속에는 잉어의 생피로 보이는 것이 가득 들어있다. 아직 어두운 때 십수 마리의 잉어를 잡아 피를 짜내 가져온 것이겠지.

"저 혼자서는 마실 수 없지만 그렇다고 스님께 생피를 권하는 것도 좀."
"아드님의 효도의 증표입니다. 드실 수 있는 만큼 드시고 나머지는 호수로 돌려주시지요."
"그런가요. 돌려준다고 생각하면 괜찮겠네요."

노파는 소중한 듯 항아리를 들어 올렸다.
노지심은 그 사람을 위해서도 살 수 있다고 했던 완소칠의 말을 떠올렸다. 어쩐지 여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머니와 같은 정도로 신성한 것. 완소칠의 어조에는 그런 울림이 있었다.
하녀가 와서 아침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소박한 음식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죽과 채소, 여러 가지 생선이 놓여있는 게 마치 저녁 식사 같았다.
감사의 표시로 돈을 꺼내어 노파에게 건넸다. 노파는 고사했지만 억지로 하녀에게 건네주었다.
맑은 날이었다.
산길을 오를 즈음에는 호수로부터 희미한 바람이 불어왔다. 호수까지 4리 정도인가. 산이라기보다 언덕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정상에는 사람이 없는 정자가 있다. 한가운데는 탁자 대신 돌이 있다.
그곳에서는 양산호도 운성 거리도 잘 보였다. 양산호에서는 몇 척의 배가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노지심은 저들 중에 완씨 형제의 배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해는 중천에 걸려 있다. 약속 시간이 가까웠다.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2기이다.
앞을 달려온 1기를 봤을 때, 노지심은 뭔가에 얻어맞은 듯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확실히 마음은 넘쳤다. 그러나 그래서 움직일 수 없었던 게 아니었다.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과 정말 만나고 말았다. 말로 하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있을 리 없는 사내가 있다. 그런 느낌도 들었다.

"오, 화화상 노지심 님이군. 송강에게서 이야기는 들었네."

말에서 내린 남자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동계촌의 조개라 하네."

이야말로 영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없다. 커다란 몸집도 아니고 표정도 온화해 보인다. 노지심은 오래전, 이 세상에 자신이 영웅이라 부를 사람이 있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있었다. 그건 지금 잘 알 수 있었다. 이름을 대는 것도 잊어버린 채 노지심은 그저 서있었다.
2기째가 겨우 따라왔다.

"이 사람은 창주(滄州)에서 함께 여행을 했던 내 친구로 시진(柴進)이라 하네."

시진은 말에서 내려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았다. 두 사람 모두 30대 중반 정도 됐을까.

"노지심입니다."
"좋은 날이군."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개가 말했다. 그 말투에도 왠지 노지심은 감동했다.
1기가 더 비탈길을 올라왔다. 노준의가 답답한 모습으로 타고 있다.
오솔길 쪽에서는 송강이 혼자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땀을 많이 흘린 듯 거무스름한 피부에 햇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이걸로 다 모였군."

조개는 정자의 탁자에 앉았다.

"송강은 말을 싫어하니까 말이야."
"말은 그럭저럭 탑니다만."

노지심은 조개를 향해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그게 이상하기도 했다.
말에서 내린 노준의도 정자로 걸어와 노지심과 눈을 마주치고는 즐거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송강입니다."

살짝 숨을 헐떡이며 송강이 말했다. 조개가 웃음을 터뜨렸다. 노준의와 시진도 이름을 댔다.

"동지들이 모였네. 오늘은 그것 만으로도 좋군."

조개가 말했다.

"뜻에 대해서는 지겨울 정도로 송강과 의논했네. 동지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도 포함해서 말이야."
"어디선가 힘을 합칠 기회도 생기겠지. 조개와 나는 오랜 친구지만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싶었네. 마음을 허락한 사람들에겐 송강이란 동지가 있다는 걸 전해주게."

송강의 목소리는 전에 없을 정도로 안정되어 마치 돌 탁자에 스며들 것만 같았다.
시진이 창주의 대지주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지주지만 소작인이 많은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노준의는 소금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개는 양산호에 있는 산채를 웅거할 장소로 삼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송강은 관리의 부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노지심은 자신에 대한 것만을 이야기했다.
그뿐이었다.

"또 만나세."

헤어지며 조개는 그렇게 말했다.


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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