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천고의 별(10) 終 by 뇌세척


"자신이 없는 게냐?"
"없습니다. 제 뜻대로 움직일 수는 있지만 저 숫자를 상대로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여태까지 마을의 젊은이 백여 명이 필사적으로 싸워 물리친 놈들이라고요."
"그거면 됐다. 자신이 있을 리 없지. 있어서도 안되고. 허나 넌 사가촌 보정의 아들로서 적과 싸워야만 한다. 네가 어느 정도인지는 해보면 알게 될 거다. 스스로 깨닫는 게 좋아."
"청이 하나 있습니다, 스승님."
"말해보아라."
"마을을 위해서라도 도적은 어떻게든 물리쳐야 합니다. 제가 죽으면 사람들을 지휘해주시겠습니까?"
"녀석하고는. 싸우러 갈 사람에게 해줄 말은 아무것도 없다. 가거라."

말에 오른 사진은 익숙해진 봉을 쥐고 저택을 나섰다. 서늘하지만 알몸인 상반신의 아홉 마리 용이 바람에 흔들렸다.
십여 기의 도적들은 혼자 나온 사진을 보더니 하나둘 모여들어 비웃기 시작했다.

"어이, 구문룡. 아무도 네 말을 듣지 않게 된 거냐? 인정머리 없는 놈들이구만."
"용 하나당 하나씩 쳐서 아홉 번은 패 죽여야겠네."

사진은 도적들이 뭐라고 떠들던지 상대하지 않고 봉을 움켜쥐었다. 적의 무기는 창과 검, 커다란 도끼에 가지각색이다. 지금까지 소화산 도적과도 일대일이라면 어떻게든 싸워왔다. 하지만 마을을 얼쩡거리는 건달들과는 역시 다르다.
그런 게 십여 명. 하나씩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다.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도적 둘이 앞으로 나서자 빠르게 달렸다. 엇갈리며 봉을 두 번 휘두른 것만으로 둘 모두 땅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믿을 수가 없었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생각할 여유는 나머지 도적이 일제히 공격해오는 것으로 사라졌다. 말이 달린다. 그리고 물러난다. 다시 달리다가 반전한다.
그렇게 십여 명 전원을 단숨에 쓰러뜨렸다. 땀도 채 나지 않았다.
숨어서 이를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도적들을 포박했다.

"대단하십니다, 도련님! 꿈을 꾸는 것만 같습니다."

말이 제멋대로 저택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택에는 왕진과 아버지 사예가 마주한 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스승님.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뭐가 말이냐."
"도적들이 인형처럼 보였습니다."
"그게 우리가 만났을 때의 네 모습이다. 내게는 그때의 네가 인형으로 밖에 보이지 않더구나."

왕진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석 달에 걸친 수행이 이어졌다.
왕진이 다시 길을 떠나겠다고 말한 것은 추위가 풀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머니도 이전보다 기력을 차리셨다. 너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시던 게 삶의 보람이 되신 거겠지. 무술을 가르치는 것도 끝났으니 전부터 생각한 대로 연안부로 떠날 생각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승님. 다행히도 개봉부에서 스승님을 추격해오는 기색도 없고, 이제부터 오의(奥義)를 전수해주시리라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요. 연안부 같은 말씀 마시고 여기 사가촌에서 계속 편히 지내세요."
"그렇게 호의에만 기댈 수야 없지. 그리고 무술에 오의 같은 건 없다, 사진. 어느 정도 기량에 도달하면 각자 혼자서 터득하는 것이 오의가 되는 거야."
"전 더 배우고 싶어요. 스승님께 배울 수 있는 게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아버지 사예도 나와서 사진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전 사진 옆에 없는 편이 좋습니다, 사예 님. 전 무술 밖에 모르는 인간이에요. 사진도 그렇게 되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무술로써 세상을 이롭게 한다면 그야말로 배운 가치가 있는 거죠. 전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사진은 아직 젊습니다. 너무 젊을 정도에요. 이제부턴 세상에 나아가 자신을 갈고닦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갑자기 스승이 없어진다는 것이 사진은 믿겨지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스승이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 그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넌 좀 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거라. 사가촌이란 무엇인지, 집이란 무엇인지, 사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무술로 세상을 이롭게 하거라. 나처럼 괴팍한 인간이 되지 말고."
"스승님이 목표였어요. 제 앞에 있는 거대한 산이었다고요. 그런 스승님이 갑자기 없어진다니 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말하면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흐느끼면서도 사진은 필사적이었다.

"연안부로 가시겠다면 제가 모시겠습니다. 저는 농사일에는 서툴러요. 마을을 이끄는 일은 농부의 마음가짐을 잘 아는 사람이 하는 게 좋을 테죠. 그러니까 연안부까지 제가 모실게요. 다시 여행을 가시겠다면 어디까지든 모시겠습니다."
"지금은 감정이 격해졌을 뿐이다, 사진. 나는 네게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쳤어. 나머지는 세상에서 너 스스로 배우는 수밖에 없다."
"아닙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스승님이 제 앞에서 사라지시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요"

아직 더 배우고 싶다. 이 스승과 싸우고 싶다. 그런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때려눕혀진대도 사진은 어떻게든 따라갈 생각이었다.

왕진은 온화한 시선으로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이 예의에 맞는 건가요, 사진?"

왕진의 어머니가 나와 말했다.

"그것이 예의라고 제가 가르쳤던가요? 당신에겐 나이 드신 아버지가 계세요. 그분을 내팽개치고 따라가겠다는 것이 당신의 예의인가요? 친아버지를 버리게 만든 왕진의 입장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건."
"당신은 아버님께 효를 다하세요. 아시겠습니까, 사진 님. 그것이 인간 세상에서 말하는 도(道)라는 것이에요."

아버지가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도 사진의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머물렀군요, 사예 님. 짐을 챙겨서 바로 출발하려 합니다."

온몸이 싸늘했다. 사진은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너와 만나서 다행이다, 사진. 이별의 말은 하지 않으마. 왜냐면 이별이 아니니까. 나는 네 안에 살아 있어. 그렇게 믿고 있다."

왕진은 웃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저도 젊은 아들이. 아니, 손자가 생긴 것만 같아 생각지 못한 즐거움을 얻었어요. 여기서 보낸 시간을 여행 밤의 꿈이었다고 생각할 거랍니다."

아버지가 있다. 이미 늙으신 아버지다. 따라갈 수도 없다.
이별도 수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사진은 저택의 문 앞에서 말의 재갈을 쥐고 기다렸다. 곧 왕진 모자가 나왔다. 아버지가 노잣돈이 든 주머니를 건넸지만 왕진은 받지 않았다. 사진은 손을 내밀어 왕진의 어머니가 말에 오르는 것을 도왔다.
미소 짓고 있는 두 사람은 잠깐 가까운 곳에 다녀오려는 듯한 기색이었다.
두 사람이 떠나가는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이건 꿈이었던 걸까요, 아버지?"
"정말 꿈만 같구나. 허나 넌 정말 강한 사내가 됐단다."

나는 네 안에 살아 있다.
사진은 왕진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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