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들의 격렬한 삶의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재미 영웅삼국지

강함이란 의미에선 의형제의 또 한사람 장비 역시 강하다. 그의 강함을 잘 보여준 사건이라 하면 장판 전투 하나면 끝이다. 적벽 전투 직전, 유비가 형주에서 쫓겨 오로 도망치던 도중에 조조 기마군단의 맹렬한 추격을 받았다. 장판까지 추격당했다는 걸 알게 된 장비는 몇 안되는 수하만으로 방어전을 펼치고 유비 일행이 장판교를 건너가는 걸 지켜본 뒤에 마지막엔 조조군 앞을 홀로 막아선다.

"나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한 이 장판교를 건널 수 없다. 누구든 배짱 있으면 나와보라. 지금 다리 위에는 이 장비 익덕 혼자뿐이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의의 에피소드 같지만 실은 정사삼국지 촉서 장비전에 제대로 기록되어 있다. 1장에서도 조금 얘기했지만 난 이 장비라는 인물에 대해 여포와 비슷하게 애착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 내가 장비에게 더해준 것은 지성과 다정함, 그것도 외면으로는 절대 드러나지 않고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지성과 다정함이다. 유비를 대할 때 이외로는 무인이 되고자 지원해온 젊은이를 철저히 단련시켰다가 그 젊은이가 전사하자 무덤을 파고 자신의 손으로 묻어주는 식의 다정함이다.

"묻어주세. 자기가 죽은 자리에서 흙이 될 거야. 그것이 무인의 각오니까."
장비는 입을 꼭 다문 채 땅을 파기 시작했다. 도우려는 부하들을 밀치고 동향과 단둘이서만 파들어 갔다.
흙을 덮었다. 돌 하나 얹어놓지 않았다. 무덤은 마음속에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또 아내와 부하에게 손수 만든 돼지고기 요리를 대접한다는, 장비의 이미지에는 없어보이는 장면도 더했다. 장비의 아내? 그렇다. 이런 남자에게 어울릴 아내를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내가 멋대로 결혼시켰다. 이름은 동향(董香)이라 하고 역시 무예에 재능있는 여성으로 잘 어울리는 부부다.
장판교의 싸움에서 유비가 버리고 달아난 적자 아두를 분전한 끝에 구해낸 조운 역시 최고의 무인이다. 연의에도 나오는 이 한 사건으로 조운은 아마 그 누구보다 세상 여성들의 인기를 끈 무장일 것이다. 젊어서 유비를 쫓아온 조운은 1년 간 수행하고 오라는 명을 받고 각국의 무장 아래서 싸움의 본질에 대해 배운다. 그리고 3년이 지나 격렬함과 민첩함을 지니고 유비군으로 돌아온 이 남자는 의형제의 동생(弟分) 지위를 확고히 했다. 머지않아 촉의 선대들이 하나하나 세상을 떠나자 관우와 장비의 싸우는 방식을 젊은이들에게 철저하게 가르치며 노년에 이르기까지 직접 전장터를 누볐다.
촉의 무인들로는 또 한 사람 마초가 있다. 마등과 그 일족이 조조에게 학살당한 것으로 서역에서 군대를 이끌고 조조에게 반란을 일으켰고, 그 수급을 베어내기 직전에까지 쳐들어가기도 했다. 얼마 안가서 촉의 유비를 의지해오지만 이 사람에 대해선 뒤의 장에서 다시 얘기하기로 하자.

서역에서 마초의 맹공을 막아내고 조조를 지켜냈던 위나라의 허저도 잊어선 안될 무인이다. 정사에도 "용모는 위엄있고 강인하며, 용맹함과 힘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다"(위서 허저전) 라고 쓰여있고 한손으로 소 꼬리를 잡고 백보 남짓 끌고간 적도 있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성품이 신중하고 법령을 엄수했고, 질박하고 무겁고 말이 적었다" 라고도 쓰여 있다.
조조는 허저의 용맹(勇壮)함을 한눈에 맘에 들어해서 숙직 경호 역을 삼아 항상 신변 경호를 맡겼다. 조조의 암살을 계획했던 자들이 허저의 모습을 보고 망설이다가, 허저의 쉬는 날을 노렸는데 어째서인지 마음이 불편하던 허저가 다시 되돌아와 반역자들을 처단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난 허저를 좋아해서 그 강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일절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남자로 만들어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조조를 그림자처럼 경호하고 조조는 허저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몸을 맡긴다.
적벽 전투 후에 전장에서 이탈하는 조조를 전신전령으로 지켜내고 추격해온 장비의 기마대를 막아내는 장면이 내 허저의 최고의 장면일지도 모른다.

"저는 이쯤에서 작별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장비와 조운을 저지하려는 건가?"
"예."
"죽지 말라, 호치. 자네가 죽으면 호치라고 부를 사람이 없어져."
"예."
"자넨 늘 대답이 짧아서 좋군."

허저는 조조를 "나리"(정발본)라 부르고 조조는 허저를 별명인 "호치"로 부른다. 힘은 호랑이 같지만 멍하니 있었기에 붙은 별명으로, 조조 이외의 사람이 이렇게 부르면 허저는 말없이 상대를 베어버린다. 강한 허저를 표현하기 위해 겉에서 최대한 감정을 깎아냈기 때문에 이런 인물상이 된 것이다.

싸움이야말로 모든 것이었던 여포, 형을 천하인으로 만들기 위해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관우와 장비, 조운. 나리(조조)가 오래 살아남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허저. 한마디로 무인이라고 해도 여러가지 타입이 있다. 그밖에도 위나라의 하후연과 하후돈, 장료, 전위. 촉나라의 왕평, 위연. 오나라의 태사자, 주유, 한당, 황개, 정보, 육손...
내게 있어선, 최후에는 어디선가 쓰러져가는 이 사내들이 무엇을 이루어냈는가 하는 건 아무래도 좋다. 이러한 사내들이 살아낸 인생, 발버둥치며 나아가는 인생으로부터 무얼 읽어내는지가 삼국지를 읽는 묘미(醍醐味)일 거라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덧글

  • 칼스 2018/11/20 05:45 # 삭제 답글

    영삼의 장비는 제가 화봉 장비 이상으로 좋아하는데, 정말 돼지쌈밥요리 묘사가 최고였당께요ㅠㅠ 직접 해먹어보고싶던 먹방! 확실히 캐릭터의 깊이도 역대 장비 중 최고 아닐까 싶고ㅎ

    영삼은 유독 황충에 대한 평가와 애정이 꽤나 박하던데, 그 얘기가 안 나와있네유...관장마조 다 띄워줘놓고 여기서도 황충은 외면하는건가ㅋㅋ 황충빠는 웁니다ㅠ
  • 뇌세척 2018/11/24 12:14 #

    읽기만 해도 오늘 저녁은 통돼지구이로 간다! 싶을 만큼 생생한 장면이었죠. ㅎㅎ
    황옹은 저도 궁금해져서 삼국지독본엔 더 나와있지 않을까 하고인물소개 부분을 찾아봤는데 세상에...
    황충은 달랑 3줄 밖에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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