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가장 강한 것인가 by 뇌세척

아직 삼국지를 쓰기 전에 중국문학가 이나미 리츠코 씨와 얘길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누가 가장 강하냐니, 여포가 아닐까?" 하고 리츠코 씨가 말씀하셨는데 그녀는 정사삼국지의 전 번역에 참여했고 이후 삼국지연의를 홀로 번역할 정도의 삼국지 팬이다. 보통의 여성이라면 조운이라고 대답할 법한데 여포가 최강이라는 건...원래 여포에게는 어딘가 여심을 자극할 만한 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가장 강한 것일까 하면 나도 여포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을 상대로 해서 지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그 관우는 어떨까.

여포와 같이 홀로 1만의 병사에 필적한다고 일컬어진 관우는, 또한 그 이상의 理の人(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원문 삽입), 의인(義人)이었다.
조조의 급습을 받은 유비가 서주에서 패하고 도망쳤을 때 하비에 있던 관우는 유비의 부인들을 지키기 위해 조조에게 항복한다. 조조는 관우의 무를 아쉽게 여겨 부하로 삼고자 열성적으로 설득했지만 관우는 그 은의에는 감동했어도 유비를 배반하라는 권유에는 결코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도 전투에 종군한 관우는 서전(緒戦)에서 원소군의 맹장 안량의 목을 간단히 베어오더니 조조에 대한 은의는 다했다며 바로 두 부인과 함께 유비에게로 귀환한다. 이 깔끔함과 긍지 높은 점이 관우의, 관우다운 점이다.
연의에서는 팔꿈치에 꽂힌 독화살의 독을 제거하기 위해 연회석에서 의사에게 팔꿈치를 절개하게 하고 득득 독을 긁어내어 봉합하더니 껄껄 웃었다는 호쾌한 에피소드도 있다(75회).

다만 유비가 촉으로 들어간 뒤에 만년의 관우는 무인으로서는 허전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의형제 유비에게 보답하고자 형주를 지켜내야만 했고 점령 통치가 일이기 때문에 함부로 싸울 수도 없었다. 이치를 중시하고 의가 두터우며 백성을 위해 애쓰던 관우는 사람의 약함이나 교활함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그 결과 가장 싫어하는 모략에 의해 아군에게 배신당하고 만다.
패색이 명백한 전장에 얼마 안되는 측근 만을 거느리고 출진하는 관우.

"깃발을 올려라. 관우 운장의 기를."
"예."
"성을 나가겠다. 난 끝까지 단념하지 않으련다.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는 것이 사나이다. 전군, 익주의 나리 곁으로 귀환한다."

단 열명 뿐인 이 싸움은, 무인(戦人)으로서는 박복했던(薄幸) 한 사내에게로의 내 부족하나마 최소한의 꽃길(花道)이었다.


영웅삼국지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기선 관우가 포로가 되거나 하지 않고 오군을 향해 돌격하다 죽음을 맞이하죠. 진궁을 구하고자 적진으로 돌격하다가 쏟아지는 화살비에 최후를 맞는 북방 선생의 최애캐 여포와 거의 흡사한 장면이기도 해요. 영웅삼국지는 제가 읽은 책 중에서 처음으로 관우가 전사하는 식으로 마무리를 지은 책이라 특히 더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그 장면에 저런 의미가 있었다는 게 참 고맙다고 할까, 관우라는 인물이 바라지 않았을까 싶은 최후를 묘사해줘서 뭉클함마저 느껴졌어요.

본문 마지막의 저 꽃길이란 단어는 花道라고 쓰여있는데 일본어로는 '활약하던 사람이 아깝게 은퇴하는 시기' 이런 뜻도 있더군요.
일단은 그냥 단어 그대로 집어넣는 게 의미가 더 와닿는 것 같아서 저대로 놔뒀습니다.

덧글

  • 얼음칼 2018/11/01 08:17 # 답글

    花道(하나미치)는 슬램덩크 강백호의 일본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노우에가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그런 허망한 결말을 예정했다는 식의 의심을 사기도 했습니다.
  • 뇌세척 2018/11/02 18:21 #

    슬램덩크는 우리 이름이 너무 익숙해서 일본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정말 절묘하게 들어맞는 이름이네요.
  • 2018/11/03 09:46 # 답글

    저렇게 묘사되는군요.. 영웅삼국지 정말 읽고 싶어집니다ㅠㅜ 저리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글귀들이라니..

    그쵸 하나미치, 일본 프로레슬링에선 입장로를 뜻하기도 하는데 주로 은퇴하는 명인들의 마무리? 마지막? 그런 뉘앙스가 강하네요 "네 마지막 꽃길을 마련해주마!" 식으로ㅋ 요샌 국내서도 꽤 쓰이던데

    관우.. 아아 관우.. 제목 보고 들어왔다가 짤방과 함께 제대로 치이고 갑니다 ㅜ
  • 뇌세척 2018/11/04 12:41 #

    그런 의미가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마지막 꽃길, 내려가는 길. 전 처음엔 마냥 좋은 의미로만 생각했거든요.
    창천항로는 뭐 언제봐도 뭉클하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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