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천고의 별(6) 북방수호전

조사를 위해 감옥을 나왔다.

"내 사자를 훌륭히 쪼개놨더군. 솜씨만은 인정해주지. 과연 금군 창술사범을 할 만해."

바로 옆에 각박한 미소를 띈 고구의 얼굴이 있다.

"네 마누라가 겁탈당할 것 같았다고 울부짖으며 호소하는 통에 정말 그러지 어떤지 몸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몸을 어떻게."
"뻔하잖나. 겁탈을 당했다면 사내의 정액이 몸에 남아있겠지. 그게 인정된다면 넌 무죄다. 금군부의 의사가 조사하겠지만 입회인도 있어. 지원자가 많아서 어떻게 뽑는 게 좋을지 지금 생각중이다. 세간에 유명한 미인의 비밀스러운 장소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아내는..."
"겁탈은 당했지만 정액을 쏟아내기 전에 네가 돌아왔다고 말하고 있다. 뭐, 믿을 수가 있나."
"다른 남자가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네 처가 말했다. 허튼 소리는 마라. 너와 함께 함께 마시던 하인이 평소대로였다고 말했으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아무튼 네 처의 비밀스러운 곳부터 조사하겠다. 입회하는 건 나로 괜찮겠지?"
"내 목을 베시오, 고구 님. 아내가 말한 건 모두 날 비호하기 위해 한 말일 뿐입니다."

도망쳤어야 했다. 베어버린 순간 다른 건 아무 생각말고 그저 도망쳤어야 했다.
방으로 다른 무리가 들어왔다. 한 가운데 있는 사내를 보고 임충은 소름이 끼쳤다.

"고구 님, 여긴 제가."
"그래? 마누라 쪽은?"
"내버려두면 됩니다. 남편을 비호하고자 필사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필사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아서야 쓰나, 이부."
"그렇다면 고구 님이 좋아하시는대로 조사해보시죠. 제가 볼일이 있는 건 이 사내 쪽이니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임충은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깨달았다.

"그럼 난 마누라의 얘길 들어주지.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필요없을 것 같군."
"뭐든 원하시는대로 하시죠."

이부는 고구를 빨리 방에서 쫓아내고 싶은 듯한 말투였다.
곧 고구가 사람 몇을 데리고 방을 나갔다.

"지금부터 심문을 시작하겠다. 그 전에 하나만 일러두지, 임충. 네가 편해지는 길은 하나 뿐이야. 아는 걸 전부 토해내는 거다."

여느 때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 눈에, 표정도 없다.

"네가 고 대장의 사자를 죽인 것도 상관없어. 죽이기까지 할 줄은 나도 생각 못했지만 말이야. 묻는 것에 대답하기만 하면 그 건도 불문에 부치겠다."

이 방에서 들어보면 모든 걸 움직이고 있는 건 고구가 아니라, 이부였다.
둘이서 주고받은 말을 다시 생각해봐도 이부가 고구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처럼마저 느껴졌다.

"듣고 싶은 것부터 시작해보지. 널 움직이고 있는 자가 누구냐. 금군 내부를 정탐하고 있는 건 왜지. 그리고 노지심이란 중과는 무슨 관계인가. 그 정도는 들어보고 싶은데."

왜 속였는지도 이걸로 알 수 있었다. 이부는 처음부터 임충을 의심하고 여러가지를 캐물을 상황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이부의 일은 반란분자를 색출해내는 것인가.
변명해봤자 소용없을 거라고 임충은 생각했다. 이부는 사람을 베어죽인 것조차 문제삼지 않았다.
교묘하게 계속 숨겨왔던 자신의 정체를 이부는 알아챈 것이다. 노지심에 대한 것조차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디부터 얘기해줄 텐가, 임충?"

얘기할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 말 없이 고문 받다 죽는 수밖에.
마음을 정했다. 죽음을 각오하자 혼란스럽던 자신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투지만이 솟구쳤다. 이것도 싸움이야. 자신이 줄곧 적이라고 생각해왔던 것과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싸움인 거다.

"괴로운 생각을 하는구먼, 임충. 죽을 각오를 했다고 해서 금방 죽이진 않아. 죽어서 편해지리란 생각은 마라."

싸움은 시작됐고 임충은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질문을 반복하는 것은 이부를 포함한 다섯 명으로, 만나본 적 없는 자들이었지만 모두 이부와 비슷했다.
저녁 때까지 뭐라고 하든 임충은 눈을 감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싸움을 시작할 때를 생각했다. 동관과 고구의 대군이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도 숫자는 적지만 정강한 기병이 따르고 있다. 동지들도 다른 부대를 이끌고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문득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임충은 눈을 뜨지 않았다.

"아내가 자네에게 꽤나 빠져있잖나, 임충. 오늘까진 부드럽게 대해준 거야. 오랜만에 내 물건도 좀이 쑤시는군그래. 내게 부탁하면 어떻게든 된다고 알려줬거든. 자네를 어떻게든, 할 수도 있다고 말이야."

임충은 눈을 뜨지 않았다. 장람에 관한 걸 들으면 마음이 흐트러진다. 그걸 참아내기 위해서라도 눈썹 하나 움직여선 안된다.

"내일은 금군부가 아닌 내 저택으로 오도록 말해뒀어. 무슨 일이든 하려는 것 같지만 네 아내에게는 지옥이 될걸. 내일만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

임충은 눈을 뜨지 않았다. 질문은 늦은 밤까지 계속됐고 물을 주는 것도 없이 감옥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도 같은 질문이 반복됐고, 저녁 무렵 고구가 나타났다.

"잘 길들여놨더군, 임충. 네 마누라가 울면서 스스로 다리를 벌렸다고. 피부가 흰 여자야. 하고 있으면 점점 붉게 물드는데, 이게 또 뭐라 말할 수 없이 진미란 말이지."

울컥하는 걸 임충은 억눌렀다.

"나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내일은 고관 몇 불러다가 구경하게 해줄 생각이다. 이번 상대는 너보다 훨씬 몸집이 큰 저택의 하인 둘이 될 거고 말이야."

이건 꿈이라고 임충은 자신을 타일렀다. 꿈속에서 화내거나 슬퍼할 뿐, 눈을 뜨면 잊어버릴 거다.
감옥으로 돌아가기 전에 약간의 물이 주어졌다. 그건 갈증이 더 심해질 정도의 물에 불과했다.
다음 날 고구가 나타난 것은 이전처럼 저녁 무렵이었다.

"울부짖더라고. 온몸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몇 번이나 가버리지 뭔가. 네 이름을 부르면서 말이야! 사내 둘에게 번갈아가며 능욕을 당하더니만 끝나고나선 널 살려달라고 빌 정신도 남아있지 않더군. 눈이 잔뜩 젖어서는. 저래서야 점점 짐승처럼 변해가겠지."

눈을 감고있었다. 분노가 있는 건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나쁜 소식이네, 임충."

이부의 목소리.

"부인이 자네 집에서 목을 매고 죽었어. 지금 소식이 들어왔네."

억누르던 것이 결국 끊어졌다. 임충은 고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목에 손이 닿기 전에 몸이 공중에 떴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두 발목이 사슬에 묶여있다는 걸 임충은 떠올렸다.

"지금 당장 여기서 내보내달라고 말해봐, 임충."

귓가로 이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일으켜져 앉은 자세가 되자 임충은 눈을 감았다.
순간의 격정이었다. 장람이라는 여자도 꿈속에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감옥으로 돌아와서도 목의 갈증이 심해 잠들 수 없었다.
그때 옥졸이 물이 담긴 국자를 내밀었다.

"난 당신에게서 창을 배운 적이 있소. 임충 선생. 먹을 것은 무리지만 물이라면 몰래 줄 수 있수다."

감옥 안으로 내밀어진 국자로 임충은 달려들었다. 단숨에 들이마셨지만 몸에 충격이 왔다.
진한 소금물이었던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목구멍에 손가락을 쑤셔넣어 토해냈다. 조금 토해냈지만 입으로 돌아온 소금 맛에 견디기 힘들었다.

"분명 창을 배우긴 했지만, 짜증날 정도로 당신에게 나자빠져서 말이우. 그 감사의 표시요."

옥졸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임충은 신음을 억눌렀다.
상체를 일으켜 앉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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