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에게 반한 남자 영웅삼국지

"조조는 정사마저도 자신의 손으로 좌지우지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능의 왕이 되길 바라고 있는 거지요."
"천하를 얻는다는 게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아닙니다. 평정하는 힘과 정사를 돌보는 힘은 별개의 것이어야만 합니다. 만능의 왕은 때로는 판단력을 잃게 됩니다. 만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중략) 정사는 정사에 소양이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밑에 두고 왕은 그저 잠자코 보고만 있으면 되는 겁니다."
"말하자면 내가 왕이 되고 그 밑에서 자넨 정사를 돌보겠다는 건가?"
-영웅삼국지 2권에서-

여포의 행동 양식을 처음부터 구성해가면서 실은 나 자신이 여포의 협기(侠気)에 점점 더 반했던 것 같다. 전장으로 향하는 여포에게 검정 일색의 갑주를 걸치고, 목에 붉은 천을 두른 것도 나다. 여포의 기마대 또한 민첩하고 강해 보이는 검정색 일색으로 했다. 장안을 떠날 때도 사람에게 쫓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나가는 것처럼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에게 있어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아내를 죽게 했다. 저택 정원에 구멍을 파고 아내의 시신을 매장한 여포는 장안에 남을 이유를 잃고 떠난 것이다.
여포는 수 백기를 이끌고 장안을 탈출하여 무한(武漢)을 거쳐 원술에게로 갔다. 다시 "정사"와 "연의"의 세계로 돌아가자. 자신을 받아들여 주길 기대했던 원술이 면회를 거절하자 그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기주의 원소. 그의 청을 받고 출진한 싸움에서 공을 세우지만 원소 역시 진심으로 여포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찾아간 것이 장막이란 무장이다. 여기서 여포는 평생의 길동무(道連れ)가 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진궁이다.

진궁은 원래 조조의 막료(幕僚)로서 그를 섬기며 그 재능을 인정받고 있던 남자였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인해 조조를 배반했다. 그리고 장막 밑에 머물고 있던 여포에게 세상에 나서볼 생각은 없는지 말을 걸어온 것이다. 여포도 어째서인지 이 뜻을 받아들여 장막의 적인 조조와 싸운다. 이 싸움이 끝나고 조조와 결별한 진궁은 여포를 따르게 된다. "정사"에 진궁의 신상을 기록한 것이 없기 때문에 조조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연의"에서는 동탁 토벌의 싸움에서 패하고 도망치던 조조의 이야기를 들은 현령 진궁이 감명을 받고 부하가 된다. 그 이후 도망치는 와중에 묵었던 집에서 돼지를 잡아 손님들을 대접하려던 일가족을, 소리만 듣고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오해한 조조가 몰살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것을 본 진궁의 마음이 떠났다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연의 4회).

진궁은 왜 조조를 버리고 여포를 선택했을까. 진궁을 쓸 때는 자신의 재능을 펼치길 바라는 한편, 위에 서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격의 인간을 생각했다. 예를 들어 조조나 유비 같은 타입은 목적을 위해서 부하를 버리거나 하는 것도 꺼려 하지 않았다. 진궁은 그런 걸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포는 희귀한 무인이면서 전략도 없으며 아무것도 없다. 단순한 무인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인간이, 함부로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여포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가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도 채울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느낀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리께서는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없어. 질색이야."
"그런 영웅호걸을 찾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서로의 마음을 담은 부분이다. 진궁은 여포를 서포트하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여포는 싸움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행복한 것이다. 잠깐 동안의 사귐으로써 진궁은 여포가 좋아지게 된다. 여포도 지금까지의 어머니나 아내에 대한 것과 달리, 마음을 나누고 대화할 수 있는 대등한 신뢰 관계를 맺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진궁이 천하를 쥐겠다면 함께 해주는 것도 괜찮다. 이야기 상대라고는 적토라는 말 뿐이던 여포가 우정이라는 말을 이해하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유비와 만난 여포는 천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싸움에는 뜻이 필요하다고 설득하는 유비에게 여포는 이렇게 답한다.

"말이 있고 창이 있소. 갑옷을 입고 적과 맞붙어 싸우는 것. 나는 그것이 싸움의 전부라고 생각하오. 난 그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소. 떄문에 싸움을 하는 거란 말이오, 유비 님. 유비 님은 그게 잘못됐다는 말씀인 듯하오만, 나에게는 진궁이 있소. 싸움의 의미는 나 대신 진궁이 생각해 주고 있소."

일생 단 한 명의 친구를 얻은 여포는 살아가는 의미와 자신의 역할까지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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