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초선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 영웅삼국지


수도에서 절찬 포학한 생활을 보내던 동탁은 어느날 기습 같은 여포의 일격으로 어처구니 없이 죽음을 맞았다. 그 시체는 시장에 버려졌고 정사(위서 동탁전의 배송지 주)에 따르면 "버려진 동탁은 비만인 몸이었기에 시체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땅에 배어 풀이 붉게 변했다. 그 시체를 지키고 있던 관리는 날이 저물자 커다란 심지를 만들어 동탁의 배꼽 위에 두고 등불을 밝혔다. 불빛은 아침까지 꺼지지 않았고 그렇게 며칠이 이어졌다." 라고 한다.
동탁의 죽음으로 인해 도읍은 다시 혼란해졌다. 주도권을 둘러싼 다툼이 격화되고 모략의 무서움을 모르는 여포는 수도에서 쫓겨나 도망친다. 한조의 권위가 소멸한 군웅할거 시대가 시작하는 가운데 여포는 부하들을 이끌고 거처할 곳을 찾아 각지를 떠돌게 된 것이다.
삼국지에는 "만약에" 라는 몇 개의 순간이 있지만, 동탁 지배하에 있던 도읍에 여포가 남아있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여포가 동탁을 죽이지 않았다면 시대는 어떻게 흘러갔을지를 상상해보면 재미있다.


그런데 동탁에 여포라 하면 절세의 미녀 초선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연의"에서는 동탁의 전제 정치를 걱정하던 후한의 사도(최고직, 삼공의 하나) 왕윤이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기 위해 젊은 기녀(芸妓) 초선을 이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왕윤은 동탁과 여포의 약점이 호색함에 있다고 보고, 여포와 초선을 약혼시킨 다음 그녀를 동탁에게 바쳤다. 초선은 이것도 나라를 위함이라 각오하고 동탁에게 애쓰는 한편, 눈을 피해 여포에게도 추파를 보낸다. 결국 두 사람은 초선의 포로가 되어 왕윤의 시나리오대로 여포가 동탁을 죽인다는 흐름이다.
이 에피소드의 원형은 "동탁은 늘 여포에게 중문을 지키게 했는데 여포는 동탁의 시비와 사통하니 그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하며 내심 불안해했다." 라는 정사 위서 여포전의 글이다. 이것을 본 연의의 작가가 초선이라는 미녀를 만들어내 역사의 빈틈에 끼워넣은 것이다.

물론 나의 "여포전(伝)" 에서 초선은 등장하지 않는다. 제아무리 쇠퇴했다지만 한 왕조의 최고 직책의 왕윤이 어린 기녀를 계략의 기둥으로 삼을 리가 없지 않은가. 현실성이 떨어진다. 더구나 아내 이외의 여자는 여포의 눈에 거슬릴 뿐이다. 그런데 왕윤은 여포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먼저 여포의 아내에게 공물을 보낸다. 여포의 약점이 거기 밖에 없음을 왕윤은 꿰뚫어본 것이다. 여포는 기뻐하며 왕윤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왕윤에게서 "자신은 모반죄로 동탁에게 죽게 됐다" 는 얘기를 듣게 된다. 아내의 마음을 달래준 연약한 남자를 돕기 위해 여포는 동탁 암살을 맡겠노라고 생각한다. 두 마음을 품은 왕윤이 털어놓는 이야기와 그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여포. 여기에 2가지 타입의 인간의 마음이 그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덧글

  • 칼스 2018/06/16 15:39 # 삭제 답글

    '전장의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부인 말을 잘 들었다(혹은 걱정했다)' = 로맨티스트

    '처를 저버리고 제장들의 아내와 사통했으면서 어찌 그들을 후대했다 하는가?'

    ... 동탁 수극 사건도 그렇고, 최후 때도 그렇고 사실 여포는 소위 물건 잘못 놀려 패망한 대표적 사례로 봐도 과언이 아닌데, 역시 나쁜 남자가 한번 순한 모습 보여주면 단번에 괜찮은 남자로 보이는건 만고의 리빙포인트!
  • 뇌세척 2018/06/19 23:22 #

    그런 이미지가 생겨난데는 영웅삼국지도 한몫한 것 같네요.
    제 경우에는 그 조조전이란 게임의 이미지도 있지만요.
    아무튼, 북방 선생도 정사를 읽었음에도 이런 캐릭터가 잡힌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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