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만이 가진 힘이란 by 뇌세척

삼국지의 영걸들 / 기타가타 겐조
1장 "사내들의 만남"

유비만이 가진 힘이란


유비들이 무위무관(無位無官)으로 유랑하는 동안 황건의 난과 동탁과의 싸움으로 이름을 떨친 조조는, 후한의 명문 출신이자 이미 190년대 중반 동탁의 사망 이후 최대의 실력자이던 원소에 버금갈 만한 지반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헌제를 수중에 넣음으로써 군사력과 동시에 헌제라는 명분을 도구로 삼아 통일을 향한 한층 더 거센 전쟁의 나날로 들어갔다. 이때 대조적인 것은 원소다.
그럴 기회가 있었고 헌제를 보위한다면 원소일 거라는 세상의 평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진영으로 헌제를 모시는 일은 없었다. 난세의 패자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자신이 새로운 왕조를 열겠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세의 군인 실력자로서 어떤 의미에선 당연한 결론이다. 황제라고는 해도 힘없는 자가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조와 원소의 판단이 갈린 것은 황제를 도구나 방침으로서 써먹을 수 있느냐 아니냐일 뿐이다.

그러나 유비에게 있어서는 달랐다. 조조나 원소와 달리 또한 공손찬이나 손견 같은 다른 난세의 유력자(有力者)와 다르게 유비에겐 자금도 영지도 대대로 내려온 가신이나 병력도, 진정한 의미로서의 가문도 없었다. 가진 건 유씨 성 뿐이었다는 게 정사에서 그려지는 방식이다. 촉한 출신의 진수가 썼으니까 유비에 대한 동정으로 처음의 이 부분도 조금 과장해서 썼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실제로도 정사의 기술과 비슷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패권을 두고 다투는 군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은 싸워서 이겨나가며 커져갈 가능성이 있는 군사력을 제외한다면 왜 싸우느냐 하는 이념뿐이다. 후한을 지키겠다는 이념, 한나라 황실에 대한 존황사상(尊皇思想)이다. 나는 유비가 제갈량에게 말하는 것으로 그 사상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 황실 4백 년이 굳건히 부흥하면 5백 년, 6백 년이 지속된다. 그리 되면 거의 고귀하다고 해도 좋을 만한 혈통이 이루어진다. 쉽사리 그에 대신하려는 사람도 나올 수 없게 된다. 천년이 지속되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 때는 그 혈통이 국가 질서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국가에는 그런 질서의 중심이 필요하다.
-북방삼국지 6권에서-

유비가 관우, 장비와의 만남에서 말한 것은 실제로는 한나라 4백 년의 은의, 충절의 소중함과 당시의 존황사상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조조나 원소가 당초의 원칙을 버리고 패도에 매진하는 와중에도 변함없이 그 원칙만을 말하는 유비를, 두 사람은 역시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어쩌면 정세 판단을 못하는 사람이라 역시 내가 같이 있어야만 한다고. 그 옳그그름(是非)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유비의 뜻을 함께 했으리라. 그게 내가 이해한 바다.

존황이란 원칙만을 말하는 유비와 행동을 함께 한 관우와 장비. 그 24년간의 유랑을 하며 목숨을 걸었던 싸움도 그 대부분은 유비가 동맹을 맺고 있던 상대를 위함이었다. 유비를 위해서만 싸울 수 있게 된 것은 중원의 서쪽 익주에 들어가 촉을 세우기 직전에 불과하다. 홀로 만 명의 적을 대적할 수 있다고 일컬어진 두 사람이 만일 조조에게 갔다면, 손권에게 갔다면 역사로서의 삼국지도 조금 다른 전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나는 생각한다.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을, 더없이 행복했을 만남이었으리라고.

덧글

  • 칼스 2018/05/21 08:42 # 삭제 답글

    사실 북방본 삼고초려 씬에서 묘사된 유비의 저 이상은 일본의 천황제(만세일계?)와 비슷해, 처음 읽을 때는 '에이 이게 무슨, 역시 일본 작가라서' 라며 살짝 핍진성이 떨어지지 않나 싶었죠ㅎ

    근데 생각해보면 유비 마음이 어땠을지야 상상의 영역이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게 바로 소설이란 장르가 갖는 장점 아니겠는가 싶기도ㅎ

    딴걸 떠나, 관우 장비가 24년간 온전히 유비를 위해 싸울 수 있었던 시간은 입촉 직전 직후라는 해석이 뭔가 쿵하고 와닿는 느낌이네요. 이 작가분은 정말 관장에 대한 해석이 진짜 제 취향인듯ㅠㅠ 제갈량과의 츤(관우) 데레(장비)적인 관계 묘사도 그렇고요.
  • 뇌세척 2018/05/23 00:36 #

    저도 처음엔 으잉? 싶던 기억이 나네요.
    책에서의 유관장의 관계는 정말 제 취향에도 잘 맞아요. 내용의 마지막 문장도 그래서 여전히 여운이 남고요.
    여러번 썼다 지웠다 말해보면서 고쳤지만 원문 느낌의 반도 안 나온 것 같아서 민망하기 짝이 없네요.
    아무튼, 그들의 관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지만 유관장의 내용은 여기까지라 많이 아쉽습니다.
  • blus 2018/05/23 07:29 # 답글

    형제와 같은 주종.
    부자와 같은 사제.

    촉한의 로망스는 끝이 없죠.ㅋㅋㅋ
  • 뇌세척 2018/05/24 10:15 #

    심지어 유선과 황호 같은 소울메이트 따위로도 이어지는 촉한 로망스 매들리는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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