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천강의 별(7) 북방수호전

수호전 1권 서광(曙光)의 장
천강(天罡)의 별

4.
걷기 시작한지 열사흘이 지났다.
역시 연안부는 멀다. 비록 말을 타고는 있어도 연로하신 어머니께는 너무 힘든 여행일 것이다. 현재로선 금군부가 보낸 추격대의 모습은 없다. 급하게 움직이면서도 한층 더 서두르고 있는 것은 어머니가 서두르란 말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왕진에게 등에 짐을 메고 이 정도 걷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역참을 지난 지도 상당 시간이 지났다. 거기서 여관을 잡아야 했다고 왕진은 후회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안색은 점점 안 좋아졌고 가끔 괴로운 듯 말의 안장에 매달리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계속 서두르라고 말했다.
해가 지고 어둠 속을 2각(30분) 정도 걸었지만 다음 역참이 나올 기색은 아직 없다. 역참 간 거리가 떨어진 곳일 것이다. 잘못하면 밤중까지 걸어야하고, 만일 역참이 있다고 해도 손님을 더 받아줄지 어떨지도 알 수 없다.
어둠 속에서 빛이 보인 것은 그렇게 2각을 더 걸었을 무렵이었다. 여관은 아니지만 여기에 묵어갈 수 있게 부탁하자고 왕진은 생각했다.

"어머니, 오늘 밤은 여기서 묵어야겠어요."
"여긴, 여관은 안 보이는구나."
"그렇지만 굉장한 저택이에요. 부탁하면 묵어가게 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무리 그래도 벌써 개봉부의 추격대가 임박했으리란 생각도 들진 않고요."

어머니도 굳이 거절하려고 하진 않았다. 기력만으로 말 등에 매달려 계시던 것도 이제 한계에 달하신 것 같았다.
문을 두드렸다. 대문만 하더라도 상당한 저택이다. 밖으로 나온 하인(使用人)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사정을 말하고 하루 묵어가길 청했다. 하인은 한 차례 물러나더니 잠시 후에 노인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이거, 어머님을 모시고 고생하셨소이다. 사양하실 것 없소. 들어오시구려."
"노잣돈도 조금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어느 정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건 걱정 마시오. 어머님을 쉬시게 해드리는 게 우선이니까."

호의에 감사를 표한 왕진은 말에서 어머니를 안아 내렸다.
방 하나가 준비됐고 발을 씻을 데운 물도 하인이 날라 왔다. 어머니께 나온 식사는 죽과 채소절임이다. 노인이 먹기 좋게 한 배려 같았다. 왕진은 집 주인의 방으로 갔다. 식사는 양고기 같은 것이 있고 주인은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죽을 먹는 듯했다.

"긴 여행인 것처럼 보이오만 어디까지 가시오, 장진 님?"

장진이란 이름을 댔다. 조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연안부의 지인을 만나러 갑니다."
"멀구려. 장진 님은 어쨌든, 어머님께는 힘드실 게요."
"어머니께 고생을 끼쳐드려 송구스럽기 그지없지만 지금은 그저 견뎌내며 무사히 여행을 마치려 합니다."

주인이 요리를 권했다. 주인이 젓가락을 쥐고 나서 왕진도 식사를 시작했다.

"좋은 말을 타고 있고, 어머님의 행동거지(挙措)도 점잖으신 것을 보면 어떤 분인지 궁금하지만 그건 묻지 않으리다. 한 가지만, 이 늙은이가 권하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으시겠소?"

"그거야 뭐. 다만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잠시만, 적어도 사흘 정도는 여기에 머물지 않으시겠소? 내가 보기에 어머님이 탈이 나신 듯하오. 원래 피로가 원인이겠지만 내장이 약해지신 게 안색에 드러나시더군."
“그 정도로 심하단 말씀입니까?”
“원래라면 한두 달 몸을 쉬시게 하는 게 좋다오. 다만 시급해 보이니 적어도 사흘이라고 말한 게지. 나도 노인이니 아는 게지만 목숨과도 관련된 일이라오. 장진 님은 느끼지 못하셨소?"
"원래 굳건(気丈) 하시고 약한 소리 같은 건 하지 않으시는 분이셨습니다."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하실 게요."

어머니가 지치신 건 알고 있었다. 단지 한결같이 급하다고 말한 것도 어머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어떻게든 기력을 유지하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개봉부로부터의 추격대의 낌새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어디로 도망쳤는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여기까지 여럿이 쫓아오면 반드시 알 수 있다. 적은 인원이 덮쳐오면 때려눕힐 자신도 있다.

"사흘, 아니 닷새 분의 사례는 하겠습니다 닷새간 여기에 머물러도 괜찮을지요."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시게. 아직 날도 덥고 노인에게 긴 여행은 자칫 잘못하면 큰일이 날 수도 있는 일인지라 쓸데없는 줄 알면서 한 말이니. 어디 닷새뿐이겠소, 열흘도 좋고 스무 날도 좋으니 여기서 지내다 가시구려."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머리만 숙이고 있지 말고 식사부터 하세. 내가 죽을 먹는다고 해서 걱정은 말고. 늙으면 몸에서 이런 걸 원하는 법이라네."

술도 권해왔으나 그건 사양했다.

"우리 외아들은 아직 열아홉이 건만 한말(斗)을 다 마셔버린다오."
"호오, 열아홉의 아드님이."
"내 나이 마흔다섯에 두 번째 처가 낳아준 놈이라네. 처는 아들놈 여섯 살 되던 해에 죽고 그때부터 내 손으로 키웠지. 강한 사내로 자라주길 바랐는데 이게 너무 지나쳤던 모양일세."

주인이 입가로 웃었다. 머리는 하얗게 세었고 주름이 두드러진 손등에는 거뭇거뭇한 반점이 무수히 있다. 지금을 살아가는 보람은 그 열아홉 된 아들뿐인지도 모른다.

"너무 강한 사내가 되어버렸지 뭐요. 허나 정말 강한가 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오. 강함이란 무엇일까 하는."
"아드님이 열아홉이 되었다고 하셨죠. 나머지는 아드님이 직접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죄송합니다... 저는 생각한 걸 그래도 입 밖에 내버리는 성격이라, 이런 여행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그 때문입니다."
"허나 고결한 분이오. 말에서 어머님을 내려드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오. 이 사람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 그 손을 보며 생각했지."
"노년의 나날을 평온히 지내게 해드리는 것이 제 꿈이지만 어머니께 고생만 끼쳐드리는 못난 아들입니다."

주인이 온화한 시선으로 왕진을 바라보았다. 왕진은 조용한 밤이라고 생각했다. 바람도 없고 더위도 견딜 만하다. 그리고 푹신한 침구 속에서 어머니가 주무시게 할 수 있었다.

"내일은 아들놈도 돌아올게요. 한번 만나주시구려. 시골이라 장진 님 같은 어른(大人)을 볼 기회가 별로 없다오."
"보는 건 좋지만 저 같은 자가 뭘 할 수 있을지요."
"아니 아니, 어머님과 장진 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될게요."

주인이 몸을 일으키자 왕진은 인사를 건네고 방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십수 일의 여행으로 훨씬 나이를 드신 것처럼 보였다. 그 옆에 누워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바로 잠들 정도로 피곤하지 않은 자신이 슬펐다.

아침, 어머니가 일어나셨지만 여기서 닷새 동안 머물게 됐다고 말씀드리자 식사도 들지 않고 다시 잠에 드셨다.
밤에 봤을 때보다 더욱 큰 저택이었다. 주인은 사예(史礼)라 하고 이 주변의 마을은 사가촌(史家村)으로 불리는 듯하다.

"어머니는 일어나셨는가?"

사예가 정원을 걸어오며 말했다.

"닷새간 여기 머문다고 말씀드렸더니 식사도 들지 않으시고 다시 잠드셨습니다."

보통 때의 어머니였다면 이유를 물으셨을 것이다. 상당히 지치신 거겠지.
왕진은 사예와 함께 죽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정원 모퉁이에는 하인이 거처하는 집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축사에는 소나 돼지가 있는데 왕진의 말도 거기서 보살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문 쪽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대여섯 명이 정원으로 뛰어 들어왔다. 왕진은 함께 있던 사예를 감싸듯 앞에 섰다.

"뭣들 하는 게냐, 네놈들은. 다섯이 덤벼봤자 내 상대는 못된다. 저택으로 몰아넣었으니 절대 안 놓쳐. 당분간 사가촌을 못 돌아다닐 정도로 만들어주마."

승패는 명확했다. 처음 들어온 다섯 명은 그저 봉을 휘두를 뿐이었지만 용 문신의 젊은이는 제법 소양이 있어 보였다.
기합이 엇갈렸다. 하나 둘 쓰러질 때마다 젊은이는 과시하듯 머리 위에서 봉을 빙글빙글 돌렸다. 네 번째가 쓰러졌을 때 다섯 번째가 봉을 집어던지며 도망 치려했다. 젊은이는 봉을 집어던져 그 사내의 등을 명중시켰다.

"바보 같은 짓을."

무의식에 왕진이 말했다. 젊은이의 얼굴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이, 거기. 내가 바보라고?"
"당신을 바보라고 말한 게 아니오. 봉을 던진 것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한 거요."
"아는 척 시건방진 소리를."
"이 녀석, 진아. 손님께 무례하구나."

사예가 말하자 젊은이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했다.

"아버지의 손님이라구요?"
"그렇단다. 무례하게 굴지 말거라."
"괜찮습니다, 사예 님. 바보 같은 짓이라 말한 건 틀린 말이 아니니까요."
"호오, 또 말했겠다. 뭐 하는 아버지 손님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못 들어주겠는걸. 왜 바보인지 설명하고 나와 겨뤄봅시다."
"어떤 경우에도 손에서 무기를 떼서는 안 되네. 자신의 팔을 버리는 격이니까. 던지지 않았더라도 자네라면 충분히 따라잡았을 걸세. 만일 던진 걸 피했다면 맨손으로 상대와 마주해야 했겠지."
"알겠네. 나름 아는 게 있다는 거로군."
"바보라고 말한 이유를 물었기에 말해준 것뿐이네. 겨루는 것은 사양하지. 사예 님 아드님께 상처라도 냈다가는 면목이 없으니까."
"뭐라고."

젊은이는 눈을 빛내더니 왕진에게 봉을 들이밀었다. 때려눕힌 다섯 명은 그 사이에 문밖으로 도망쳤다. 젊은이는 성큼성큼 왕진에게로 다가왔다.

"난 몸을 보면 대강 알 수 있어. 그럭저럭 아는 건 있는 것 같군. 허나 아버지께 자신을 잘 보이려는 마음이 너무 강해. 난 봉술에 통달했거든. 깎아내린 상대가 구문룡(九紋竜) 사진(史進)이었다는 게 당신의 불운이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봉을 던지는 건 역시 어리석은 짓이네."
"저놈들이 버리고 간 봉을 잡아. 그 정도는 기다려주지. 여기까지 말한 거다. 겨루지 않고는 못 끝내."
"허나."

왕진는 사예 쪽을 바라보았다.

"아드님을 다치게라도 했다가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격이 되어 버립니다."

왕진의 그 말이 젊은이를 거듭 화나게 만든 것 같았다.

"괜찮소, 장진 님. 아들놈 뼈 한두 개 부러진다고 해도 그건 아들놈이 초래한 것이지. 가능하면 콧대를 꺾어주셨으면 하오만, 과연 그게 가능하겠소이까?"
"저는 맨손도 좋고 거기 굴러다니는 장작 한 개비라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도 아드님이 다칠지도 모릅니다."

입이 또 화를 부르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멈추지는 못했다. 사범이었을 때의 성격은 없어지지 않은 것 같다.

"내 봉술을, 장작 한 개비로 상대하겠다고."
"괜찮소, 장진 님. 내가 부탁드리리다. 만약 아들놈 콧대를 꺾어놓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시구려. 허나 그게 어렵다면 이 이상 말해서 아들놈을 흥분시키지 말아주시구려."
"알겠습니다. 가능한 아드님을 다치지 않게 해보죠."
"그만두시지."

장작을 집어든 왕진에게 젊은이가 말했다.

"나와 겨룰 거라면 봉을 잡아라. 장작이라니, 겨뤄보기도 전에 나에 대한 모욕이다."
"알겠네. 봉으로 이긴다면 장작을. 장작으로 이긴다면 맨손으로 해보지."

왕진은 떨어져있던 봉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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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시작했습니다. 노지심과 임충이 이른바 "그분"의 지시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며 조금 달라지나 싶었는데 일단 왕진 부분은 원작과 비슷한 전개로 흘러가네요. 길어져서 여기서 한번 끊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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