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천강의 별(4) 북방수호전

수호전 1권 서광(曙光)의 장

천강(天罡)의 별

깊은 밤, 왕진은 소리 없이 정원으로 나왔다. 인기척이 있다. 다만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밖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기척인 듯했다.
그곳에 달빛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모습으로 왕진은 상대가 누구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그저께 만났던 그 남자였다. 아니, 스치듯 지나갔다고 해야 할까. 구릿빛의 삭발한 머리가 지금은 검은 그림자 속에 보이고 있다.

"노지심이라 합니다. 이 머리 때문에 화화상(花和尚)이라고 불리고 있죠."
"이름을 밝힌다고 해서 우리 집 정원에 들어와도 되는 건 아닐세. 하물며 이런 늦은 밤에."
"왕진 님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방문이라도 알리고 와주면 좋겠군. 이런 늦은 밤에 정원에 침입해서야 대화고 뭣도 아닐세."
"왕진 님이 이렇게 나와 주시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정원에서 찾아뵈었음을 전할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랬군."

기척을 발하여 이쪽이 알아차리게 한다. 그것이 방문 인사란 의미인가.

"재미있군. 훌륭해. 그럼 받았다고 치고 얘기는 들어보겠네."

노지심이란 중은 정원의 구석까지 걸어갔다. 여전히 기척이라고는 전혀 없다.

"무리하고 계십니다, 왕진 님."
"무슨 말인가?"
"금군 개혁에 대해섭니다. 허나 그래서야 군 수뇌부의 원한만 살 뿐이죠. 이 나라에선 그렇습니다. 정상적인 생각이 통하질 않아요. 이득만 찾아 떠도는 자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금군의 개혁은 내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네. 그걸 그만두라는 건가?"
"개혁 좋죠. 허나 금군 개혁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직속 군이 정강(精剛)해지네."
"쓸데없는 일입니다. 강해지고자 하는 금군의 숫자는 적고 그 자들은 딱히 개혁을 하지 않아도 강하니까요.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걸 개혁하는 걸세. 병사 개개인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내 일이니까."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 늦은 밤에 찾아뵌 겁니다. 훌륭한 생각이시지만 좁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가는 분이시기에, 좀 더 시야를 넓혀보시면 어떨지 하는 생각을 전해드리고 싶어졌죠. 금군이란 것에 구애되지 않는다면 왕진 님의 눈에는 더 다른 것들이 보일 겁니다."
"무엇이 보일지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군. 무엇보다 그걸 보는 것은 내 사명이 아닐세."
"금군의 무술사범으로서 금군을 개혁하고자 하시죠. 그럼 이 나라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를 개혁해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으십니까?"
"나라를 말인가?"
"금군만의 개혁으로는 국가 전체에 있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금군 이외의 군도 썩어가고 있고요. 위에서 아래까지 관리들도 물론, 그와 이어진 상인들 또한 마찬가집니다. 그렇기에 이 나라를 개혁하겠다는 마음을 품어주시길 바랐습니다."
"적임이 아니네. 그럴 만한 그릇도 못되고."
"백성의 한 사람이죠, 왕진 님도."

구름이 끼었는지 가끔씩 달빛이 사라졌다. 그때마다 노지심의 눈빛만이 강렬히 빛났다. 이상한 사나이라고 왕진은 생각했다. 이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어도 불쾌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금군 개혁에 미력이나마 다하겠네. 그건 내가 마침 금군의 무술사범이기 때문이야. 내가 만일 농부라면 보리 한 알을 키워내고자 최선을 다하겠지. 사람은 각자 그렇게 살아가면 좋다고 생각하네."
"확실히 선생님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는 금군 병사들은 운이 좋군요. 허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득을 위해 금군을 이용하려는 자가 있고, 금군 자체를 먹이로 삼고 있는 자도 있죠. 지금은 한 알의 보리에 정성을 기울이는 백성이, 그 보리와 함께 헛되이 짓밟혀 죽는 시대가 아닙니까."
"이제 그만두게, 노지심 님. 확실히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내 성미엔 맞지 않네. 입으로 논하는 자보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말 없이 보리를 기르는 인간으로 있고 싶네."
"그래도 금군을 개혁하려 하고 계시죠.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금군을 개혁하는 것은, 이 나라를 개혁하는 큰 것의 일부라고 생각해주실 수는 없습니까?"
"내 성미에 맞지 않는 얘기라고 말하지 않았나. 여기엔 노모가 계시네. 깨우고 싶지 않아. 그만 돌아가 주지 않겠나, 노지심 님."

역시 노지심에 대한 불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노지심이 어떤 자인지에 대한 질문도 깊게 파고들고 싶지 않았다.

"또 뵙겠습니다, 왕진 님. 다음번에는 거리의 어느 주점에서 술이라도 하면서요."
"그거 좋군. 허나 나는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네. 무술에서 술은 마음을 흐리게 하니까."
"백성들도 보시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백성들을 접하면 이 나라의 무엇이 안 되는 것인지도 보이시게 될 거고요. 무례한 방문을 내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선생님이 점점 더 좋아지는군요."

노지심은 웃는 듯했다. 하얀 이가 보였다. 커다란 머리를 한번 숙이고는 노지심은 기척을 지우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왕진은 침실로 돌아와 그대로 잠들었다.


덧글

  • 2018/04/23 21:11 # 답글

    숨도 못쉬고 읽었습니다! 이야.. 이 시점에서 이미..
    읽는이 마저도 술 한 잔 생각나게 하네요 ㅎㅎ
  • 뇌세척 2018/04/26 01:17 #

    초반 등장 장면이 있긴 했지만 왕진이랑 노지심을 엮어놓을 줄은 생각 못했어요.
    수호전 캐릭들마냥 뜨끈한 쇠고기 안주는 어려워도 족발에 한잔 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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