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수호전 1권 천강의 별(1) 북방수호전

수호전 1권 서광(曙光)의 장

천강성(天罡星)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머리 하나가 나와있었다. 햇빛에 타올라 구릿빛으로 반짝이는 삭발한 머리. 머리도 그렇지만 왕진(王進)의 시선을 빼앗은 것이 또 하나 있다.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주위의 다른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몸놀림. 거구는 막 부딪칠 것 같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피해나갔다. 단련된 몸놀림이었다.
말위의 왕진과 다가오고 있는 그 남자의 시선이 순간 마주쳤다. 가늘지만 강렬한 눈빛이다. 말을 걸어보려던 왕진은 막 나오려던 말을 그만두었다. 강렬한 눈빛 속에서 사악한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눈 위로 역시 가는 눈썹이 있고 코는 귀여울 정도로 작지만 입은 이상할 정도로 컸다. 뻗어나간 턱은 머리보다도 커 보였고 목은 그 턱처럼 굵었다.
스쳐 지나가는 사이에 한 번 더 말을 걸어볼까 싶었지만 결국 말을 삼켰다. 자신의 뒤로 기마 10기(騎)와 40명이 따르고 있다. 한번 멈추면 주저앉아버릴 자도 있을 터. 그 정도로 다들 지쳐있는 것이다.
보통 병사라면 무난히 해낼 훈련이었다.
5백 번의 봉 휘두르기 이후 휴식을 취한다. 불평을 말하는 자도 나왔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천 번 봉을 휘두르고 나서 한 명 한 명 왕진 자신과 겨루기를 한 뒤에 10리(약 5km)를 달렸다. 그러자 고작 성안의 병영으로 돌아갈 체력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특히 기마 10기가 심각했다. 이래 봬도 금군 병사로 말을 타는 자는 장교였다.
최근 명문가의 자제들이 금군에 들어오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새로 부임한 금군 대장 고구(高俅)가 그걸 허락한 탓이다. 명문가의 자제라면 관리라도 되면 좋을 일이지만 군에는 이권이 가득하다. 병사들의 식대만으로도 방대하지만 그 외에도 군복이나 무구(武具) 등도 항상 보급된다. 그런 것을 다루는 부서에 들어간다면 큰돈이 주머니로 들어오는 것이다. 명문이란 이권의 냄새를 맡는 피인가 하고 왕진은 생각했다. 송나라 군대가 점점 썩어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왕진은 금군의 무술 사범이었다. 아버지 왕승(王昇)의 때부터 그러했다. 병사 개개인의 실력을 높여주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다. 명문가 출신이거나 그 연줄로 금군에 들어온 자는 1년이 채 못 되는 현장 지휘를 경험할 뿐, 돈이 움직이는 부서로 이동한다. 그러고 나면 거의 더는 왕진과는 상관이 없다. 현장에 있는 동안 단련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고도 금군인가. 그러고도 황제를 지키는 병사라 할 수 있겠는가. 부끄러운 줄 알아라. 다음은 검 훈련이다. 방심하는 자는 다칠 거다. 사흘 동안 몸을 단련하는데 전념하라."

병영으로 돌아온 뒤, 50명을 세워놓고선 쓸데없는 짓이다 싶으면서도 왕진은 그렇게 말했다. 언뜻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른 듯 보이는 자가 몇이나 있다. 부대를 해산시킨 뒤 왕진은 사범의 방으로 돌아왔다. 아직 남아있던 임충(林冲)이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창과 봉 다루는 기량이 뛰어난 이 대리 사범과 창으로 겨룬다면 자신도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리라 왕진은 생각했다.

"교장(敎場) 쪽은 어떻던가, 임충?"
"동관 원수의 직속부대는 역시 약한 소리 내는 자 따위는 없더군요."

동관은 이 나라 군의 총대장으로 전쟁을 좋아했다. 원래는 환관이었다. 여자에 대한 욕망이 없는 대신 그만큼의 열정을 전쟁에 쏟는 면이 있었다. 몸집이 작고 왜소하여 무술은 그저 그랬지만 병법에 대해서 만큼은 혀를 내두를 만한 수준이었다. 직속부대 또한 역시나 싶을 정도의 정예를 갖추고 있었다.

"쓸데없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왕 사범."

임충이 선 채로 말했다.

"병사들을 성 밖으로 끌고 나가지 말라는 얘길 할 참인가. 허나 그자들은 체력이 없네. 오래달리기를 교장에서 할 수는 없지."
"그 얘기가 아닙니다."
"그럼 더 쓸데없는 얘기라네, 임충."

왕진은 요 반년 정도 연이어 상신서(上申書)를 제출했다. 금군에 들어오는 자들이 무술 시험을 치르게 해야 한다는 상신이다. 사범과 수십의 대리 사범이 한다면 어렵지 않다. 그러나 반대가 많아 기각되기 십상이었다. 이권을 목적으로 들어오는 자들의 대부분은 거기서 떨어질 터. 그러나 그것을 생각하고 상신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금군 병사는 정예여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은 사범으로서 정예로 단련시켜야 할 책임을 맡고 있다. 그것이 왕진의 신념이었다.

"사범의 생각하시는 바는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대로 받아들여질 거라면 저도 그 상신에 참여하고 싶을 정돕니다."
"그만두게, 임충. 무술인은 무술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말하면 되는 걸세. 조만간 금군 수뇌들도 알아주실 테지."
"고구 대장이 말입니까, 아님 동관 원수가 말입니까?"
"내 말이 틀림없네. 언젠가는 누군가 귀 기울여주겠지."
"왕 사범의 상신서에 대해 군 내부에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금군은 동 원수와 고 대장으로 한 덩이가 되어가고 있지만 지방군에는 둘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장군도 많이 있죠."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가."
"무술인은 무술만 가르치면 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왕진도 임충의 말대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는 못하는 성격이었다.


국내에 영웅삼국지로 유명한 기타가타 겐조 선생의 수호전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영웅삼국지라는 제목을 붙여놓았지만, 일본에선 삼국지도 그렇고 수호전에도 따로 제목이 붙어있지 않아서 북방(北方)삼국지, 북방수호전 이런 식으로 불리는 것 같아요. 일단 시작해봤습니다.

덧글

  • 2018/04/01 00:52 # 답글

    아 노달(추정)의 등장이 이것이였군요! 묘사가 제법 구체적이네요 ㅎㅎ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리스펙트-!! (_ _)
  • 뇌세척 2018/04/02 22:27 #

    빨리 임충과 만나는 장면이 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노옹의 달마야 놀자 부분은 좀 짧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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