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의 유랑을 버텨낸 유대감(1) 영웅삼국지

삼국지의 영걸들 / 기타가타 겐조
1장 "사내들의 만남"

24년의 유랑을 버텨낸 유대감

황건의 난이 수습된 후, 유비는 의용군에 참가한 공으로 현의 도위(경찰서장)로 임명되었다. 그는 관우, 장비 등의 부하들과 함께 임지로 향했지만 군(郡)에서 파견한 감찰관과 분쟁이 생긴 끝에 도위 벼슬을 간단히 내버리고는, 다시 의용군으로서 중원 각지의 소규모 반란과 도적을 토벌하는 전장의 생활로 돌아갔다. 공을 세워 관직을 얻을 기회도 있었지만 벼슬살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동탁이 낙양을 점거하는 큰 사건이 벌어져 원소 등의 제후들이 모인 동탁 토벌군에 참가했고, 유학 시절 알게된 공손찬이 원소와 대립하자 그를 도와 싸웠다. 처음 의용군 거병으로부터 8년, 그 대부분이 전투가 거듭되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유비와 관우, 장비 3인의 근거지없는 유랑의 시절은 그 뒤로도 길게 이어진다. 그나마 길게 머물렀던 것은 유비가 서주목(군권을 가진 장관)에 오른 10년부터 2년 간 정도이고, 그 뒤로 조조와 그 조조의 적인 원소의 객장이 되기도, 형주자사 유표의 객장이 되기도 하면서 중국 중앙 전역을 떠돌며 싸워나가는 세월을 보냈다. 겨우 형주 남부를 근거지랍시고 얻은 것은 오와 연합하여 조조와 싸운 "적벽의 싸움" 후의 일이다. 거병으로부터 24년. 그 24년 동안 정착할 곳 하나 없이 전투가 이어지는 사지를 떠돌면서도 관우와 장비는 유비를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관우는 조조와 원소가 싸운 "관도 전투(200년)" 직전, 유비의 처자와 함께 조조에게 잡혔을 때, 조조로부터 끈질기게 부하가 될 것을 바랐지만 그는 이렇게 거절한다.

"나는 유장군으로부터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함께 죽기로 맹세한 사이요. 그분을 배신할 순 없소." (정사삼국지 촉서 관우전)

관우와 장비는 무엇 때문에 유비와 함께 하는 걸 선택했을까. 그것이 협기(俠気) 때문이라고 하면 그뿐이지만, 3인의 관계를 좀 더 추리해보고 싶다.


덧글

  • 김찰롱 2018/03/23 13:28 # 삭제 답글

    살아계십니까
  • 뇌세척 2018/03/23 22:21 #

    안녕하세요. 늘 그렇듯 별일없이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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