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의 역전은 필연적이었다 영웅삼국지

삼국지의 영걸들 / 기타가타 겐조
서장 내가 삼국지를 쓴 이유 / 역사관의 역전은 필연적이었다.

오래된 고전에는 후대에 주석이 붙게 된다. <정사>에도 육조말(남송) 배송지란 사람이 황제로부터 명을 받고 진수가 쓴 본문의 3배에 달하는 방대한 주석을 붙여놓았다. 현재 알려져있는 <정사>는 사실 이 배송지의 주석까지 포함된 것이다. 배송지는 삼국 시대와 그 전후 시대의 사료를 토대로, 진수가 정사를 쓸 때 생략한 사실이나 잘라낸 이설 등을 추가하고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그리고 그 이설, 이야기 안팎에 <연의>라는 소설로 정리된 이야기들이 있었다. <도원결의>는 나관중 또는 그 이전에 삼국지가 연극이나 지금처럼 만화의 형태로 퍼지는 가운데 만들어진 창작인 듯하며 배송지의 주석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예를 들어 <조조가 한나라를 장악한 동탁의 손을 피해 고향으로 도망치다>라는 정사의 기술에 배송지는 <도중에 습격을 당해 조조 스스로 검을 들어 여럿을 죽였다>는 주석 외에도 <의심에 빠져 도움을 주려던 일가족을 몰살했다-여백사 사건>, <그것이 자신의 실수임을 알고도 자신은 사람을 배신해도 괜찮다고 말했다-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운운>는 둥의 2가지 이설을 기록해놓았다. 2번째와 3번째 이설을 골라서 이야기를 써나간다면 조조의 인물 조형이 어떻게 될것인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주석까지 읽고나자 어쩐지 느낌이 왔다. <연의>라는 이야기는 <정사> 그 자체에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배주>에서 드러나는 조조의 간웅적인 요소들을, 철두철미하게 덕장으로 묘사된 유비의 에피소드들과 잘 끼워맞춤으로써 성립된 것이 아닌지. 그리고 아마도 배송지 주석본이 세상에 나온 5세기 초부터 <연의>가 정리된 14세기 후반까지의 어디에선가, 위촉오 가운데 왕조의 정통성을 가진 것은 위가 아니라 촉이라는 역사관의 역전이 일어났고 그 역전에는 유비가 후한의 재흥을 바랐던 존황(尊皇)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의미부여(논리화)가 이루어졌다. 유교의 가르침대로 무력으로 권력을 쥐는 패도보다 선양 쪽이 보다 윤리적이라고 여겨졌던 중국에서는, 역전된 이후의 역사관은 사람들이 알기 쉽고 더 받아들여지기 쉬운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해봤을 때, 나 스스로 <삼국지>를 쓰기 위한 준비와 공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정사>는 역사 그 자체로도 이야기의 큰 흐름은 견고하다. 그 흐름을 따르며 때로 <연의>를 회상하고, 여러 인간이 꿈을 꾸고, 살아가며, 싸우고, 스러져가는 이야기를 쓴다. 그리하면 <남북조>를 그려낸 소설에서 쓰지 못했던, 리얼리티가 있는 역동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유비와 관우, 장비들의 만남의 이야기와 함께 1장부터 풀어가보자.

01 삼국지와의 재회
02 요시카와 삼국지에서 느낀 위화감
03 역사는 어떻게 삼국지가 될 수 있었는가
04 정사에는 작위가 담겨있다


일단 여기까지 해서 책의 서장이 끝났습니다. 이렇게 해석해보고 있자니 해석하는 것보다 부드럽게 우리말로 풀어쓰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네요. 그렇다고 완벽하게 해석한 것 같지도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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