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과 함께 강물에 떠내려간 칠군은?

이삿짐을 꾸리면서 이것저것 넘겨보다가 삼국지 100년 전쟁이란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볼 때마다 이걸 어디다 팔아야 팔릴까 생각하는 책이라, 오늘도 자연스레 이걸 어째야 하나 생각하며 팔랑팔랑 넘기고 있자니
책의 끝부분에 부록 형식으로 짤막하게 당시의 무기, 전선 생김새 등이 나와있는데 일군의 부대 편성이란 부분이 눈에 띄더군요.
책을 조금 옮겨보자면,

일군은 약 1만 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흔히 말하는 삼군이란 약 3만 명의 병력을 말한다.
그 1군을 나누어보면 대장을 중군으로 하고 전군, 후군, 우군, 좌군으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여 전군, 중군, 후군, 우군, 좌군 각각 2,500명으로 일군이란 총 12,500명이라는 말인데
문득 우금과 함께 정답게 물살에 떠내려갔던 그 칠군은 그럼 몇 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대로라면 일군이 12,500명이니까 거기에 곱하기 7을 해서 총 87,500명이 되는데, 뭔가 이건 좀 아닌 것 같고.
해서 일단 집에 있는 책들에는 뭐라고 나와있는지 찾아봤습니다. 하라는 이사 준비는 안 하고(...)

정사 관우전 : 가을, 큰 비가 내려 한수가 범람하고 우금이 이끌던 7군이 모두 물에 잠겼다.
정사 우금전 : 한수가 범람해 평지에 물이 차올라 수 장에 이르렀고 우금 등의 칠군이 모두 물에 잠겼다.
정사 조인전 : 소백, 전은이 모반하자 조인은 행 효기장군으로 임명되어 7군을 지휘해 전은 등을 토벌하고 이를 격파했다.
자치통감 : 8월 큰 장맛비로 한수가 흘러넘쳐 평지의 수심이 몇 길이나 되자 우금 등이 이끄는 7개 군이 전부 물에 빠졌다.
이문열 삼국지 : 그들이 데리고 갈 군사도 일곱 갈래의 대군으로, 갈래마다 북쪽의 굳세고 날랜 군사로 채워져 있었다.
황석영 삼국지 : 이 칠군으로 말하자면 모두 북방의 용감한 군사들로 영군장교 두 사람이 지휘하고 있었는데, 동형과 동초가 그들이었다.
영웅 삼국지 : 번성을 수비하는 조인군 2만에, 성의 북쪽에서부터 우금의 구원군 3만이 급히 달려오고 있고, 서황의 3만도 완현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한다.
창천항로 : 번성 북쪽 10리 우금 7군 3만!

일단 정확하게 숫자를 언급하는 책은 영웅 삼국지와 창천항로 뿐이네요(...).
결국 제멋대로 가정을 해보자면,

1. 칠군이란, 일군 곱하기 칠을 말한다(총 87,500명).
2. 칠군이란, 일곱 갈래의 군사들을 말한다(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3. 칠군이란, 위나라의 정예군을 말한다(촉의 오부나 뭐 그런(...)).
4. 칠군이란, 대충 3만 가량 되는데 정확히 따지지 마라.

1번이면 올레를 외치겠지만 나머지 2, 3번도 뭐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그나저나 조인과 만총, 우금, 방덕, 여상 + 서황과 조엄 + 서상과 여건 + 은서와 주개 등 12영 + 조조와 장료의 예비군 등등 + 오나라(...) vs 관우군
어째 시작은 우금의 칠군은 몇 명일까요였는데 끝은 우리 관공 쵝오로 끝났네요. 결국 칠군이 뭔지도 몇 명인지도 모르겠고(...)

결과 : 칠군이란 정확히 뭔가요?(...)
by 뇌세척 | 2009/11/04 02:40 | 유희 | 트랙백(1) | 덧글(20)
트랙백 주소 : http://deathbrain.egloos.com/tb/511336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구라 구라 구라 at 2009/11/04 17:47

제목 : 삼국지에서 칠군(七軍)
우금과 함께 강물에 떠내려간 칠군은?오늘 마침 회의도 끝나고 해서 보다,삼국지를 번역하다 한번 본 기억이 나서 다시 찾아봤습니다.위서 조엄전의 구절입니다.太祖征荊州,以儼領章陵太守,徙都督護軍,護于禁﹑張遼﹑張郃﹑朱靈﹑李典﹑路招﹑馮楷七軍태조(조조)가 형주를 정벌할 때, 조엄으로 장릉태수를 영솔하게 하다, 도독호군으로 옮겨 우금, 장료, 장합, 주령, 이전, 노초, 풍해의 칠군을 호군하게 했다.칠군의 이 7장군에게 소속된 군대 전체를 가리키는 것 같습......more

Commented by Luthien at 2009/11/04 05:34
결과와 관계없는 댓글 : 파시면 사겠습니다. (퍽)
Commented by Kael君 at 2009/11/04 09:09
관공이 진무쌍난무라도 쓰신건 아닐지 (...)

여튼 제가 본 책에선 어디선진 모르겠는데 1군이 약 1만의 병사라고 본것같기도 합니다.
근데 최근에 돌아다니는 연의판 소설은 숫자가 많이 과장됐다는게 통설이니, 이걸 믿기는 좀 난감하겠지요...

삼국지를 읽다보면 7군이란 단어가 자주 보이긴 하는데, 확실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쓰이는게 아니라 단순히 '우리부대 킹왕짱 정예임 ㅇㅇㅋ' 를 뜻한다고도 보이더군요.
뭐 툭하면 '7군을 이끌고 원정에 나선 손제리씨(?!)' 그런류 말이 자주 나오니까요.
Commented by blus at 2009/11/04 09:15
우리 관공이 최고니까요. 올레~~!!(?!?!?!)
Commented by 自重自愛 at 2009/11/04 11:01
원래 天子가 6군을 거느리고 제후가 3군을 거느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_-a
Commented by 침묵제독 at 2009/11/04 13:14
군이란 단어가 특정 한 단위만을 지칭하는 게 아닐수가 있죠.
영어의 ARMY도, 1.한나라의 군 전체, 2.육군 3,군단의 상위제대 3가지 의미가 있죠.

흔히 말하는 삼군은, 저 역시 자중자애님 말씀대로,
3만명이라는 (편성단위의) 군이 아닌,
제후가 거느리는 군(즉 제후나라의 전체 군)을 뜻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천자는 6군인데, 제후는 급에 따라 3군이 아니라 2군만을 거느리게 될수도 있다더군요.
이게 춘추전국시대 주례에서 나온거라죠..)
Commented by 마징곰 at 2009/11/04 13:29
참고로 본삼국지의 주해에는 나관중본의 주해를 인용해서 1번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도 그것에 대한 해석으로 의견이 분분하다는군요(...)
Commented by 玄兒 at 2009/11/04 14:02
교수님한테 가서 여쭤뵜더니
1번이 좀 유력하다고 하시긴 하시던데...
그럼... 정말 관공 쵝오
Commented by 自重自愛 at 2009/11/04 16:25
아니 그러면 그때 관공 휘하의 병력은 도대체 어느 정도였는지..... -o-;;;;
Commented by nighthammer at 2009/11/04 16:42
...그때 관공 병력이 4만 내외였다고 추정되니까... 두배 정도를 가볍게 때려잡네요.
Commented by 勇者皇帝東方不敗 at 2009/11/04 15:15
뭐 이러나저러나 관공 쵝오.
Commented by 최강조운 at 2009/11/04 19:15
관공은 이미 그 시점에서는 사실상 형주의 왕. ㅎㄷㄷ.

확실히 오나라 뒤통수만 아니었으면 언제나 말했듯이 정말 볼만했을거에요. ㅋ
Commented by 일국지 at 2009/11/05 01:47

[오주전]을 보면 관우가 우금군 3만을 포로로 잡았다고 합니다.

순수한 포로만 3만이었으니 적어도 3만 이상... 이라 가정하면 역시 1번이 유력하지 않을까요?


조금 더 부언을 해보자면...


관우의 예봉에 기가 질려 수도 이전까지 고려한 조조에게 사마의나 장제가 우금의 패배를 "홍수에 의한 불운이지 관우에게 깨진 것이 아니다!"며 위로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방덕전] 등을 보면 방덕의 활약상을 관우군이 겁내 '백마장군'으로 악명을 떨쳤다던가... 분명히 우금과 관우 사이의 접전이 있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마의와 장제가 말한 것처럼 단순한 운빨로 7군이 수몰했다고 하기엔... 하늘이 무슨 억하심정을 가지고 비를 우금군 위에만 내린 것도 아닌데 여러모로 변명꺼리가 되기엔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군요(...)


다만 우금을 위해 변론을 해보자면...

당시 관우는 한수 일대를 점거한 상황이라 배를 보유하고 있었고 우금은 이제 막 달려와 배를 보유하기 다소 힘든 상황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폭우가 내리자 수군 어드벤테이지를 점한 관우는 그대로 찬스를 몰아 2배에 달하는 우금군을 몰살시켰으니 운빨이란 것도 엄밀히 말해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란 거죠.... (라곤 해도 원래 전쟁이란게 기회 싸움인데. 그 기회를 잡아 적을 멸했으니 이건 분명히 칭찬받아 마땅한 일)

Commented by 일국지 at 2009/11/05 01:52

문제는 포로가 된 우금군 3만입니다.

당시 관우의 병력이 4만-5만이라 가정한다면, 우금군 3만은 적어도 관우가 이끌던 전력의 50% 이상에 달하는 엄청난 머릿수를 자랑합니다.


문젠 관공께서 병사들에겐 워낙 관대하신 분이라. 어디의 누구처럼 원소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았다며 생매장을 했다던가 강물이 막힐 정도로 도륙했다던가 하지 않고 꼬박꼬박 삼끼세때의 밥(..)을 지급한 것 같습니다.

관우가 당초에 전쟁을 일으켰을 때 형주의 전력이 입촉을 이유로 많이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가정 하에.... 대략 4만명 분의 식량을 가지고 출정했던 관우는 졸지에 7만명의 식사를 책임져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이른 겁니다.


이 3만명이 그렇다고 관우편에서 목숨 걸고 싸워줄 것도 아니고. 굶기자니 폭동이 두렵고. 그렇다고 돌려 보낼 수도 없고. 죽이자니 그것도 뭔가 좀 아닌 것 같고... 그 상황에서 군량부족을 이유로 동오의 식량을 강탈해 손권의 진노를 사고...


번성전투 최고의 숨은 공신은 바로 우금과 투항병 3만이 아닐까요?

Commented by 일국지 at 2009/11/05 01:56

그건 그렇고.... 하후돈과 장료가 예비대로 참전할 계획이었다는데.

하후돈 vs 관우의 대결이 성사되지 못해 안타깝군요.

Commented by Nine One at 2009/11/05 12:06
음.. 그 포로 3만이 관우의 발목을 잡았다라... 이래저래 오나라의 형주공략의 1등공신은 우금이란 겁니까? 아무래도 여몽에게 돌아갈 공로는 우금이 받아야 겟군요.
Commented by 미확인 at 2009/11/05 13:02
창천항로에서 우금의 항복군대가 밥을 너무먹어서 관우가 졌다는거보고 한참웃었는데 갑자기 진지해지네요;;
Commented by 일국지 at 2009/11/05 13:18

Nine ONE & 미확인//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후대사람의 생각이고 적어도 조조, 조비, 우번을 비롯한 당대 사람들은 대부분 우금을 '배반자'로 인식한 것 같습니다.

우금의 공적(?)을 인정하고 남다른 환대를 해준 인물은 바로 손권이었죠.

손권과 우금이 말머리를 나란히 할 정도로 대접을 받았는데 우번이 그걸 보고 '투항한 녀석이 부끄러운 줄 모른다'며 성질을 내고 우금은 혼비백산에 손권은 그런 우번에게 성질이 뻗치고....

나중에 양국 우호 관계를 명목으로 우금을 중원으로 보냈지만. 이후의 일은 다들 알다시피 입니다.

Commented by 일국지 at 2009/11/05 13:24

좀 더 부언을 하자면....

개인적으로 어렸을 적에 조조가 당최 왜 하후돈도, 조홍도 아닌 우금을 보냈을까... 란 의문을 가졌습니다.

맨날 이전, 악진과 뭉뜽그려 무력 70대를 넘지 못하는 3류 장수였는데다(언제나 우금, 이전, 악진이 한 팀을 먹어 조자룡과 짱뜨는...) 요코하마 미스테루의 <전략삼국지 60권>을 보면 우금이 방덕의 활약상을 시기해 다 잡은 관우까지 놓치게 만들고.... 개판이었죠.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관도대전 전야에 우금이 선봉으로 나서길 자처해 조조가 그 기백을 장하게 여겨 불과 2천명의 병사를 줬는데 우금은 그 2천의 병사로 원소군 십만과 대치하는 엄청난 배짱을 보여주고 장수의 추격전이나, 관도대전에서의 원소군 압박작전 상황에서도 끝까지 기백을 떨쳐 진채가 무너지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상대방의 공격력이 강할수록 방어력이 올라가는 타입의 장수였는데다 기백을 갖추고 진법과 대군방어전에도 능해 조조가 우금을 파견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혹여 안량 때처럼 관우와의 일기토를 우려해 방덕을 서포트로 보내고 말입니다.

Commented by 미확인 at 2009/11/05 15:56
뭐 어찌되었든 배신자는 배신자죠. 우금이 조조군에 오래있기도 했고 높은직위에도 있었으니...

그는 관우가 조조한테 한때 투항했던것처럼 자신도 그리될거라 생각한걸까요? 그의 항복은 대략 사람은 끝마무리를 잘지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죠 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었어도 게임회사들이 지금처럼 능력치를 낮게주진 않았을듯하네요
Commented by 일국지 at 2009/11/06 14:26

미확인//

워낙에 기록이 부족하여 우금과 관우가 당시의 일에 대해 직접적으로 술회한 부분은 없습니다.

다만 우금의 경우 우번의 질타에 부끄러워하고 조조를 만나자 울었다던가 몰골이 엉망이 되었으며 조비의 그림을 보고 부끄러움에 분개하여 죽음에 이를 지경이었단 기록을 보면 투항시점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지독하게 후회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관우의 경우 <연의>에선 우금의 비루함을 냉소하고 <창천항로>에선 우금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우금을 감옥에 넣은걸 봐선 그렇게 좋게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군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