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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의 말년 1부 - 공손연 낚시 사건 (1)
손권의 말년 1부 - 공손연 낚시 사건 (2) 손권의 말년 2부 - 손권의 남자, 여일 (1) 손권의 말년 2부 - 손권의 남자, 여일 (2) 손권의 말년 3부 -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1) 손권의 말년 3부 -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2) 손권의 말년 3부 -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3) 손권의 말년 3부 -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4) 손권의 말년 3부 -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5) 손권의 말년 3부 -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6) ![]() 이게 삼국지인지 맏딸의 유혹인지 모를 251년도 이렇게 지나가고, 마침내 손권의 마지막 해가 될 252년이 밝았다. 예뻐하는 아들로 태자도 바꿨겠다, 그 아들내미 받쳐줄 놈도 뽑았겠다, 다른 아들들도 왕으로 봉해줬겠다, 그동안 까이기도 많이 까였겠다, 아쉬운 점은 남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이제 그나마 편히 눈 감겠구나 싶었겠지만, 불행하게도 막타가 손권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황후 반씨가 세상을 떠났다」오서 오주전 1년 전에 황후에 오른 반황후가 급사했다. 이팔청춘까지는 아니더라도 젊은 나이였을 반황후가 골골대던 손권보다도 먼저 가버린 것이다. 법을 어겨 처형당한 아버지 덕에 언니와 함께 궐의 직실이라는 곳에 끌려왔다가 손권의 눈에 들어 용머리 태몽까지 꾸어가며 손량을 낳았고 이후 황후에까지 오른 뒤에는 골골대는 손권만 사라져주면 그 이름도 유명한 여태후를 본받아 오나라의 여태후가 될 야심까지 품고 있던 그녀였다. 실제로 손노반 떨거지 중 하나인 손홍에게 한고조 유방이 죽은 후에 여태후가 벌인 난장판에 대해 묻는 등, 손권만 죽으면 자신이 섭정하는 식으로 나서려 했던 모양인데 이렇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것이다. 「여러 후궁들이 그녀가 잠자리에 누워있는 것을 엿보다가 합동하여 그녀를 묶어서 죽이고는 사악한 질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말을 했다. 나중에 일이 누설되어 연좌되어 사형당한 자들이 예닐곱 명이나 되었다」오서 반부인전 일의 전말은 이러했다. 손권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러니 공손연부터 내려오는 손권의 말년 시리즈는 한순간도 놓칠 수가 없다. 평소 다른 후궁 모함이 취미였던 덕분에 원한을 많이 산 결과, 결국 마지막 엔딩을 목전에 두고 이런 웃기지도 않는 최후를 맞은 것이다. 손권을 돌보느라 병에 걸린 틈을 노렸다는 정사나, 자는 사이를 노렸다는 자치통감, 어느 쪽이든 그녀는 이렇게 비명에 죽었고 이후 손권과 함께 묻혔다. 어쨌거나, '나중에 일이 누설되어' 라는 게 손권이 살아 있을 적에 밝혀졌다는 것인지, 아니면 죽은 후에 밝혀졌다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 말년 팔자가 대체 왜 이렇게 꼬이는지를 병석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을 손권 또한 곧 반황후를 따라가듯 눈을 감으니, 그의 나이 71세였다. ![]() 「252년 여름 4월, 손권이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71세였고 시호를 대황제라고 했다」오서 오주전 자신의 말년 팔자와 더불어 야심 차게 준비했던 사후 계획도 마찬가지로 그의 시신이 땅속에 묻히기도 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죽기 전, 손권은 뒷일을 부탁하고자 다섯 명의 대신을 불러들이니 그들이 제갈각과 손홍, 손준 그리고 등윤과 여거(여범의 아들)이다. 그런데 뒷일을 잘 부탁한다고 맡겨놨더니만 손권이 죽자마자 평소 제갈각과의 우호도가 바닥을 달리던 손홍이 먼저 딴마음을 품게 되니 손권의 죽음을 숨긴 채 꼼수를 부리려다 같은 손노반 떨거지 중 하나던 손준에게 고자질을 당해 오히려 제갈각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같은 손노반 떨거지로서 나름 경쟁자를 하나 떨어뜨리려는 심산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얼마 전 반황후와의 일 때문에 눈 밖으로 난 것인지 손준은 오히려 손홍을 제갈각에게 팔아넘김으로써 제갈각으로부터 우호도를 올림과 함께 '이 색히 별 거 아니네' 라는 자만심을 끌어냈다. 「그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어루만져 근본을 공고하게 할 생각은 못하고 외부의 일로 바쁘며 그 백성들을 잔폭하게 사용하고 나라의 전 병력으로 위나라의 견고한 성을 공격하였지만 실패하여 죽은 사람이 만 여명이나 되고, 화를 싣고 돌아왔습니다」위서 등애전 이후 제갈각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합비신성 공격 실패 이후 인기가 급감한 틈을 노린 손준의 칼에 맞아 강 속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고 손권이 죽기 전에 남양왕으로 봉해졌던 손화와 그의 비 또한 제갈각이 내뱉은 말이 원인이 되어 사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다. 그뿐인가, 이후로도 계속 이어지는 손준, 손침 막장 테크를 타며 그들의 손에 죽거나 그들을 피해 위나라로 도망쳐버린 이들 또한 무수히 늘어갔으며 결국 손권이 죽은지 5년이 지나기도 전에 그가 뒷일을 부탁했던 다섯 신하 가운데 손준을 제외한 넷이 사이좋게 비명횡사행 차표를 끊어 손권을 따랐고 손권이 애지중지하던 손량에 이르러서는 손준의 뒤를 이어 조정을 장악한 손침에 의해 아예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 16세의 나이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충신이 군주와 떨어져 지내면 틈이 생기게 되고 교묘한 말을 잘하는 소인배가 이를 틈타 이간하게 되니 군주는 소충에 현혹되고 사사로운 은애에 연연하게 된다. 그리되면 어질고 어리석은 이들이 뒤섞여 사람을 쓰고 내쫓는 기준을 잃게 되니 이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근원은 바로 사사로운 정이 어지럽게 개입된 데 있는 것이다」 장굉의 유서 「그의 성격은 의심이 많고 사람을 죽이는데 있어서 주저함이 없었으며 만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심했다. 그는 참언을 듣고 믿어 인성을 멸하는 일을 하여 아들과 손자를 버리고 죽였다. 어찌 자손들에게 평안한 책략을 남기고 신중하게 자손의 안전을 계획한 자라고 말하겠는가? 그 후대가 쇠미하여 결국은 국가를 멸망시키게 되었는데, 틀림없이 이러한 원인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진수의 평 결국 손권이 세운 오나라 보완 계획은 여지없이 실패했고 손준, 손침, 손호 테크는 자연스럽게 오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만약 손권이 손화와 손패 사이에서 벌어진 후계자 다툼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다면 오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손권이 손화를 그렇게 내쫓지 않았더라도 결국 손화의 아들인 손호가 뒤를 이어 즉위-패망하는 것은 매한가지니 똑같은 일인가? 하지만 그 경우에도 이 난장판에서 죽지 않았을 육손을 비롯한 많은 변수들이 손화와 손호들에게 어떻게 작용했을지 모를 일이 아닌가. 뭐 어쨌거나, 손권은 결국 그릇된 선택을 했고 그 결과로 오나라는 착실하게 멸망의 길을 밟아나갔다. 그에게 나라를 굳건히 한 공은 있었겠으나 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것 또한 불행하게도 그의 몫이었던 것이다. 덤) 그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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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엔 멸족의 사례..
by 일국지 at 02:32 이 당시 소위 말하는 '.. by 일국지 at 02:31 위빠촉까는 저런 거 참고.. by paro1923 at 12/17 조조님이 세상에 난 이후.. by 최강조운 at 12/17 연의에서의 유비이미지의.. by 기린아(麒麟牙) at 12/16 관우집안도 방회가 멸족.. by 고려왕자 at 12/16 조비는 조조의 간사함만.. by 미확인 at 12/15 조조나 조비나 아주 나쁘.. by 첸에이키 at 12/15 조조는 뒷끝이... by 玄兒 at 12/15 진짜 조비는 너무 좋게 .. by 등사 at 12/15 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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