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 사기꾼 기자의 방문과 웰빙 닭찜

입소 스무 네째날 - 따스한 햇살 아래


새벽 2시에서 3시까지 밖에서 동초 경계근무를 섰다.
잠들기 전에 미리 알려줬으면 좋으련만 새벽 1시 30분, 자고 있는데 불침번이 깨워줘서 알게 됐다.
동초 경계근무를 설 훈련병들이 새벽에 교체되버린 모양이다. 다들 표정들이 아름답다.
덕분에 기상을 외치는 조교의 외침에도 잠시동안 모포를 휘감고 엎어져 있었다.
이제 이틀 남은 건가. 이제 남은 훈련도 없다고 생각하니 뭔가 허전하다.

아침은 매주 수요일이 그래왔듯이 정겨운 햄버거다.
기름이 줄줄 흐르는 햄버거 패티를 자르고 딸기잼 깡통을 까고, 치즈를 찢어놓고...
스프는 평소 나오는 국의 양의 반의 반 정도만 나와서 조금 조금 퍼주느라 애 좀 먹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무실로 돌아왔더니 tv가 나오는 내무실로 모이라는 방송이 나온다.
tv를 틀었는데 아무것도 안 나온다. 뭐하라고 한곳에 이리 모아둔 것인지 모르겠다.
모여서 잡담이나 하다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배식은 서둘러 나오라는 방송이 들린다.
일그러지는 얼굴을 매만지며 행정반 앞으로 다들 뛰어나갔다.

"가서 면도도 하고 세수도 하고 15분 후에 다시 집합한다."

뭐냐...무슨 일인가 싶어서 천천히 걸으며 들어보니 대전일보에서 찾아오기로 한 모양이다.
이것 때문에 그동안 바닥에 치약을 뿌리는 난리를 치며 청소를 했던 건가. 갑자기 짜증이 밀려온다.
밖이나 안이나 누구 찾아온다고 하면 난리를 쳐대는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10분 정도 마무리 청소를 하고서 셋팅에 들어갔는데 닭이 둥둥 떠있는 기름국 같은 게 있다.
이게 대체 뭔가 싶어서 쳐다보고 있는데 마침 상급자가 취사병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뭐냐?"

그러자 취사병은 우물쭈물 거리더니 "웰빙 닭찜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짱박아놨던 파들 다 넣었구만. 여기 뭐 넣은 거냐?"

상급자의 물음에 취사병은 어째서인지 당황한듯 보였다. 뭘 넣었길래 당황하는 거냐...
잠시 망설이던 취사병이 입을 열었다.

"간장...조미료..."

상급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러 온 기자와 대장들 모두 신났다.
식판 사진을 찍는데 담아놓은 반찬들이 식판에서 줄줄 흘러 넘칠 지경이다.
평소에도 저렇게 먹는다면 3중대는 반도 밥 못 먹을 거다. 이래서 신문은 믿기 힘들다니까...
기자는 어색하게 몇장 더 사진을 찍고는 사라졌다.

그나저나 웰빙 닭찜의 조절이 엄청나게 꼬여버렸다.
양이 얼마 없어서 조금씩 나눠줬는데 다 줬을 무렵 새로운 웰빙 닭찜이 등장한 것이다.
지금까지 먹은 욕의 두배는 되는 욕을 함께 들으니 밥맛이 절로 난다.

웅비관에서의 여군 소령 강의는 "미국은 적이 아니다" 란 내용 같았는데 조느라 듣지도 못했다.
예전에 했던 설문조사에서 '우리의 주적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같은 질문들이 있더니
이런 걸 하려고 설문조사를 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너무 추워서 그 얘기보다는 몰려오는 졸음과 추위에 굴복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내무실에 돌아와도 하루 종일 배식에 불려다녔더니 마음 놓기 쉬기도 불안하다.
역시 오래 지나지 않아 배식을 부르는 방송이 다시 들려온다. 미친다.
어쩌다 마지막 주에 이런 난장맞을 일에 걸려서 이 고생을 하는 건가 싶다.

오늘은 마지막 종교행사가 있는 날이라 그런지 평소 배식시간보다 앞당겨졌다.
서둘러 식당으로 갔더니 순두부 찌개와 콩나물 무침, 김치만 덩그러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식사는 이게 끝인가 하는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상자에 가득 담긴 삼겹살이 보인다.
말을 들어보니 조교들 간담회인지 뭔지에 쓸 거라고 한다.
우리는 저런 거 먹는데 삼겹살이라니 환장할 노릇이다.
삼겹살을 바라보며 국자를 물에 씻고 있는데 수세미로 안 씻는다고 또 한번 욕을 먹었다.
저녁은 예상대로 불평 불만이 가득하다.

종교행사는 열외로 빠지고 사람들과 내무실로 돌아와 점심 때 챙겨왔던 것들을 늫어놓았다.
햄버거빵 7개와 자그만 통에 담아온 딸기잼 약간과 숟가락, 우유 4통과 기타 등등
여유로이 모포 위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모두 뱃속으로 쑤셔넣었다.

사람들과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보니 어느새 9시가 되어 종교행사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천주교는 초코파이를 계속 줬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땅을 치며 후회했겠지만 이젠 별 생각이 없다.
나가기만 해봐라, 몇 박스 사다놓고 나 혼자서 다 뜯어먹을 테다.

오늘밤 12시에는 마지막 불침번이 있다. 이제 이것도 끝이라고 생각하니 졸립지가 않다.
곤히 자는 내무실 사람들을 깨울까 싶어 조용히 전투복으로 갈아입고서 밖으로 나간다.



아침 - 햄버거빵 2개, 불고기 패티 1개, 치즈 1장, 불고기 소스, 딸기잼, 스프, 우유, 샐러드
점심 - 명태무찌개, 웰빙 닭찜, 깍두기, 김
저녁 - 순두부 찌개, 콩나물 무침, 김치
by 뇌세척 | 2005/05/01 17:20 | 훈련소 일기 | 트랙백 | 덧글(1)
트랙백 주소 : http://deathbrain.egloos.com/tb/11767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Κ″realDv at 2005/05/01 19:55
....전 공익이지만 말입니다. 우우 훈련소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_-;)
링크 신고드립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