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 식사, 맛있게 드세요

입소 스무 하루째날 - 만연한 봄날씨는 따스하기도 하여라


"맛있게 드세요."

힘없는 목소리. 맛있게 먹으라는 건지 저주를 내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음성. 잠을 못잔듯한 쾡한 시선.
부들부들 떨려보이는 오른쪽 팔. 몇 일은 굶은듯 말라비틀어진 얼굴에 비쩍마른 몸뚱아리.
2백여명이나 되는 훈련병들에게 국을 퍼주는 일은 역시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이 잔혹한 사건의 시작은 새벽 아침체조 시간에 일어났다.

"오늘부터 3소대 3내무가 배식합니다."

내무실 사람들과 모조리 불려나가 다들 잠이 덜 깬 얼굴로 멍하게 서있는데 조교가 말했다.
배식...순간 귀돌이를 찬 뒷목으로 쇠망치로 세게 얻어맞은듯한 충격이 몰려온다.
힘든 훈련 때는 안 걸리다가 하필이면 마지막 주에 이런 귀찮은 일에 걸려들었단 말인가...
자신의 무운을 탓하며 내무실 사람들과 함께 그대로 조교를 따라 식당으로 올라갔다.

식당에는 이미 저번주의 배식담당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밥이며 국이며 각자 하나씩 맡게되었는데 어찌 하다보니 국을 맡게 되었는데
선임을 따라 조리실에 들어가보니, 밥하는 조리실이 아니라 마치 무슨 공장 같다.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며 선임을 따라 국이 끓고 있는 솥 앞에 선다.
순대국이나 설렁탕 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솥 여러개가 입을 벌린 채로 우리를 맞는다.
선임의 국을 푸는 시범을 보다가 중간부터 직접 해보니 선임의 말대로 팔이 빠질 것 같다.
보통 남자 절반만한 크기의 국자로 국을 퍼담는데 옆의 반찬은 아예 삽으로 푸고 있다...
뭔가...마치 공사장에 와있는듯 하다...

아침식사 때 간단하게 실습을 마치고 인수인계를 끝낸 뒤에 내무실로 돌아왔더니
종교행사 열외자들은 모두 침구류를 들고 나가서 햇빛에 소독을 시키라고 한다.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이쪽은 모포를 널어놓기로 했는데 털어져 나오는 먼지가 장난이 아니다.
나오는 먼지에 가려서 앞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점심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메뉴표를 보니 재수없게도 오늘의 주메뉴는 꼬리곰탕, 국이다.
필사적으로 아침에 선임이 했던 말대로 양 조절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국에 고기가 보이질 않는다.
어디에 있나 찾아보니 당면 속에 파묻혀 있다. 꺼내보니 고기도 고기가 아니라 뼈조각이다.

예상대로 양 조절은 실패, 마지막으로 갈 수록 꼬리곰탕이 아니라 퉁퉁 불은 잡채밥을 먹어야 했다.
아마 뒤에 배식받은 훈련병들은 오늘 메뉴가 잡채밥인 줄 알고 먹었을 것이다.
식판 가득 담긴 퉁퉁 불어터진 면발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다.

낮에 널었던 침구류를 내무실로 옮겨놓고 잠깐 쉬려는데 또 전부 나오라는 방송이다.
따로 노는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더니, 조교들이 공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 족구를 할 모양이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과자가 걸렸는데 매번 이기던 우리 3소대, 3위에 그쳐 산도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저녁의 짬뽕은 최악이었다. 다시마에 새우, 멸치, 무, 오징어 등...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종류의 재료들이 거무튀튀한 국물 위에 둥둥 떠있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국을 바라보고 있자니 속에 개구리라던가, 사람 손가락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국의 외모와 닭튀김 덕분에 국을 사양하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는다.
국을 한번 쳐다보고는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흔드는 그들의 모습에 저절로 나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배식 덕분에 닭튀김을 배터지게 먹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배식도 할 만 하니 다행이다.



아침 - 된장두부 찌개, 오삼불고기, 김치, 김
점심 - 꼬리곰탕, 깍두기
저녁 - 짬뽕, 닭튀김, 계란장조림, 김치
by 뇌세척 | 2005/04/30 15:17 | 훈련소 일기 | 트랙백 | 덧글(1)
트랙백 주소 : http://deathbrain.egloos.com/tb/11564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이병 at 2005/05/01 10:40
배식담당 정말 쉣이었지...
그 아침에 체조하려다가 불려나온거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_-..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