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권의 말년 -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1)


























「태자 손등이 죽었다」오서 오주전

241년 5월, 이 한 줄은 결과적으로 오나라 멸망의 개시를 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손등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손권의 행동이 멸망을 불러들였다고 할 수 있겠다.
원소나 유표가 후계자 선정을 어떤 식으로 말아먹었고, 결국 그것이 어떤 결말을 불러왔는지
직접 보고 들어 잘 알고 있었을 손권이 왜 자신의 후계자에 10살 먹은 막내 손량을 택했는지,
손권의 말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노망 대열전의 백미, 오나라 막장 후계쟁탈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대대로 이어지는 오나라의 단명 유전자를 타고 난 손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오왕의 태자로 삼고 사부를 선정해두고 우수한 인재를 정선하여 그의 빈객과 친구가 되도록 했다.
그래서 제갈각, 장휴, 고담, 진표 등이 선발되어 궁궐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서 오주오자전

「가화 3년(234), 손권은 신성으로 출정하면서 손등에게 남은 일을 모두 맡아 처리하도록 했다.
그 해는 식량이 넉넉하지 못해 도적들이 많았다. 손등은 이와 관련된 법령을 제정하여 방어했고,
그 법령으로 간사한 자들을 붙잡아 근절시키는 관건을 완전하게 얻었다」오서 오주오자전

제갈근의 아들 제갈각과 장소의 아들 장휴, 고담의 손자 고옹과 진무의 아들 진표.
어려서부터 이 같은 오나라의 젊은 엘리트들과 함께 배우고 함께 놀며 자란 손등은
착실하면서 백성을 생각할 줄 아는, 늙은 손권을 대신할 오나라의 기대주로 성장했다.
234년에는 작년에 깨지고 또다시 합비신성으로 공격 나간 손권의 빈자리를 잘 지켰고
오히려 행정력을 발휘해 날뛰는 도적들까지 때려잡아 차기 주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손등은 때때로 사냥을 하러 나가 마땅히 지름길을 경유해야 될 때도
항상 양전을 피하고 농가를 밟지 않았으며, 휴식을 취하는 곳에 이르러서도 공한지를 선택하였다」오서 오주오자전

「손등의 생모는 신분이 미천하여, 손등이 어렸을 때부터 서부인이 어머니로서 양육해준 은혜가 있었다.
후에 서부인은 질투 때문에 폐출되어 오군에서 살게 되었고, 보부인이 가장 총애를 받았다...
손등이 태자로 세워졌을 때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근본이 확립되고 도의가 생기는 것입니다. 태자를 세우려면 마땅히 먼저 왕후를 세워야 합니다."
손권이 말했다.
"너의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가?"
손등이 대답했다.
"오군에 있습니다."
손권은 묵묵히 있었다」오서 오주오자전

손등은 여러모로 싹수가 보이는 인물이었다.
백성과 신하를 아끼고 선행을 좋아했으며(보즐전) 게다가 극진한 효자이기까지 했다.
(물론 젊을 적에는 총명하다가 왕이 되면 갑자기 내면의 또라이 기질을 보이는 녀석들도 있지만)
아우 손려가 죽자 대신들의 식사까지 줄여가며 상심에 빠진 손권을 설득해 식사를 늘리게 하고
거기에 상심한 늙은 아버지만 홀로 두고 가기 뭣했는지 건업에 남아 아버지를 돌봤으니
이쯤 되면 오나라를 좋아하진 않아도 그가 손권의 뒤를 이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아쉽기만 하다.

「손등은 태자로 세워진 지 총 21년, 그의 나이 33세에 세상을 떠났다」오서 오주오자전

그러나 장래가 촉망받던 이 젊은 태자는 불행하게도 요절로 그 생을 마감했다.
태자로 보낸 20여 년, 손권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주목받던 이의 너무도 아쉬운 죽음이었다.
그러나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 손권은 손등의 유언에도 나온 삼남 손화를 태자로 삼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나라의 그 어느 누구도 곧 피바람이 닥쳐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by 뇌세척 | 2009/07/04 21:15 | 유희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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